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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나무 Jan 12. 2022

방역전체주의와 야생마 부러뜨리기

야생마를 잡아다 ‘탈것’으로 길들이는 과정을 영어로 Break Horse(말 부러뜨리기)라고 한다. 자유롭게 뛰노는 데 익숙한 야생마의 멘탈을 부러뜨려서 13평 마굿간에 네 마리가 얌전히 살면서 주인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도록 복종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말을 부러뜨리는 과정에서 상징적으로 중요한 단계가 Halter(고삐) Break과 Bit(재갈) Break, Saddle(안장) Break이다. 각각 고삐와 재갈과 안장을 말에게 익숙하게 하는 과정인데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에 걸쳐 진행된다.




먼저 고삐와 재갈을 말에게 보여주고, 냄새를 맡게 해주고, 얼굴에 부벼서 말이 친숙해지도록 한다. 어느 정도 말이 고삐와 재갈에 익숙해지면 완전히 채워서 마구간에서 쉴 때를 제외하고는 늘 하고다닐 수 있도록 한다.




그런 다음 주인이 올라탈 안장을 얹는 과정도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먼저 안장을 말등에 슬쩍 올려놓아서 말이 안장의 촉감과 무게에 익숙해지게 한다. 그런다음 말이 익숙해지면 안장을 얹은 위에 주인이 몸무게를 싣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한쪽 다리만 슬쩍 얹어본다. 조금씩 무게를 더한 뒤 마침내 완전히 올라 앉는다.




재갈을 물고, 고삐를 차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말들이 전세계에 널려 있다.




둘, 하나 반, 다시 둘, 둘 반, 둘 반의 반, 둘 반의 반의 반… 세, 세, 세…, 세엣! 다시 둘...




고삐를 풀었다 당겼다 하면서 훈련을 하니  따라온다. 이제 안장을 얹을 일만 남았다. 안장을 얹으면 백혈병, 뇌출혈, 아낙필라시스, 불임, 공황장애, 각종 , 사지마비, 발작, 치매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천천히 얹으면 문제 없을  같다.




혹시 반항하는 야생마는 당근을 못 먹게 하고 마구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면 대부분 말을 들을 것이다. 결국 말들은 안장을 자랑스럽게 얹고 야생마들에게 뽐내고 다닐 것이다. 안장 브랜드가 뭐냐고 서로 물으면서.




야생마는 자유를 갈망하는 본능이 있어서 급하게 부러뜨리려 들면 안 된다. 어떻게 할 것인지 조금씩 알려주고 얼굴에 갖다 부벼서 그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도록 끈질기게 귀찮게 하는 것이 포인트다.




반항을 하더라도 강요나 폭력은 절대로 금물이다. 야생마가 날뛰면 주인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지긋이 어깨 뒤 부분에 압력을 가해서 누가 주인인지를 넌지시 알려주면 된다. 그럼 바보같은 야생마는 자신이 더 힘이 센 것도 모르고 주인의 끈질김과 주도면밀함 앞에 굴복해버린다.




한 농장에 같이 잡혀온 야생마들 중 몇 마리가 안장을 거부하고 숲속으로 뛰쳐 도망갔다. 남아있는 안장 얹은 말들은, 바보같은 것들, 당근 못 받아먹으면 지들만 손해지 뭐, 라고 수근거린다. 고삐와 재갈때문에 자신들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작아진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고삐도, 재갈도, 안장도 처음에만 조금 거부감이 들 뿐이지 익숙해지면 괜찮다니까. 당근 하나라도 더 먹는 게 중요하지, 당근도 없으면서 숲속을 달리는 건 바보같은 짓이라니까. 안락한 마구간에서 잠을 청하는 말들의 가슴이 이유없이 헛헛하다. 배가 고픈가... 히히힝, 울음을 울어 심야 당근배달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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