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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 Feb 29. 2024

나의 무성애 시대

#굉음 에세이

A – asexual(무성애자)     

A – allosexual(유성애자)
H - heterosexual(이성애자)
L – lesbian(레즈비언)
G - gay(게이)
B – bisexual(양성애자)
Z – zoophile(동물성애자)
O – objectophile(사물성애자)
P - pansexual(범성애자)
P – pedophile(소아성애자)
P – polyamory(폴리아모리)     

T – transgender(트랜스젠더)
I – intersex(인터섹스)     

Q - questioning(모색 중인 사람)
G – gray sexuality(흔들리는 이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정희진은 성별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신체의 생물학적 성별과 별개로 타고나는 ‘정신적’ 성정체성이 있다는 게 그나마 최근에 마련된 인식인데, 정희진의 이야기는 그보다도 멀찌감치 나아가 있었다. 애초에 타고나는 건 없다고 해버리는 전복적 발상이었다.


암수로 구분되는 신체를 갖고 태어나 그 신체를 편집하거나 성애의 상대를 고르거나 하며 어쨌거나 우린 암수 중 하나로 살아간다고 생각해왔다. 세분화된 성별의 명칭들은 낯설지 않았다. 다만 내 머릿속에서 인간의 성별은 음과 양처럼 암수로 양분된 거대한 이분법의 지평 위에 있었다는 걸 자각했다.


전제가 부서질 때의 쾌감이 있다. 이 관점을 수용하기로 할 때 주어지는 어마어마한 자유가 즉각 예견되었다. 이것이 나의 해방의 키가 될지도 모른다는 직관이 떠올랐다. 인간의 성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개별 삶의 서사나 환경 변화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나의 유성애자, 이성애자 정체성은 현재에 국한된다.     


난 마지막 남자친구와 이별한 뒤 수년간 연애를 하지 않았고 연애 의욕도 없이 지냈다. ‘결혼은 안 해도 연애는 해야 한다’는 말이 늘 주위에서 달려들었고, 누군가는 ‘욕구가 없다’고 날 수식했다. 퇴사 후 어영부영 프리랜서로 전환한 후엔 비연애 상황이 자괴감의 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는 많아도 파트너가 없는 친구는 손에 꼽혔다. 다 같이 모이고 헤어질 때 둘씩 돌아가거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그들과 난 달랐다. 가진 게 친구밖에 없는 난 그 안에서도 이방인의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들이 아무리 날 철석같이 챙겨주어도 팩트에는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혼자 사는 삶은 외롭다. 그러나 내가 힘든 건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다. 난 1인분 역량 부족, 매력 부족이란 자의식에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내 스스로 날 연애 시장 밖에 위치시켰음에도 남성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패자의 기분을 느꼈다. ‘세상에 너 좋다고 와서 매달릴 남자는 없어. 네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지.’ 다들 입모양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흘리듯 했던 말들로 쪼그라든 마음의 주름이 한 겹 한 겹 펴지기 시작했다. 작년 공황 재발로 허덕이던 시기, 아빠에게 다 내가 잘못했다고 통곡한 날이 있었다. 아빠는 허겁지겁 날 달래놓고는 흐뭇해하며 소주를 들이켰다. ‘아빠는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데. 혼자 살기 힘든데 너 그렇게 해내는 거 보면.’ 들은 직후엔 이게 칭찬인지 디스인지 잠시 모호했지만 소화하고 나니 그간의 자괴감을 전부 상쇄시킬 만한 위로였다. 한번은 엄마가 반찬을 싸주며 한숨처럼 내게 말했다. ‘결혼해도 외로운 건 똑같아.’ 그날 집에 와 잠들 때까지 그 말이 밀물처럼 속에 계속 밀려들었다. 20대 이후로 엄마와 이런 대화를 많이 나누었더라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파트너를 두고 타자의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내 저울은 조금 달랐다. 내겐 연애의 이득보다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비용이 더 컸다. 그래서 난 외로움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당연한 듯 해왔다. 독신의 대가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것이 방종이나 범죄도 아니니 말이다. 난 그저 내 선택을 감당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내가 변명할 건, 내가 오로지 나에게 변명할 건 무성애뿐이었다.  

   

그러니까 지난 수년간은 나의 무성애 시대였다. 정희진의 관점을 빌어 해석하니 속이 씻겨 내려간 듯 통쾌했다. 지나고 나야만 해석되는 야바위 같은 진실. 내겐 긴 연애 정체기가 필요했다. 내 무의식은 그 시기에 무성애를 택했을 뿐이다. 이따금 벌뜩이는 신체의 성욕을 우머나이저로 잠재우며 소란한 만남 대신 고요한 독신을 추구했다. 성애에 쏟을 에너지를 일과 나 자신에게 쏟았다. 내겐 고치 속 애벌레의 변태 같은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외부 자극은 불필요했다. 아니 그건 외려 방해였다. 내 삶은 마흔 즈음에 맞을 대전환을 마침내 도래할 운명처럼 준비하고 있었다.


고치가 툭 벌어진다. 평생 담쌓고 지내던 운동이 일순위가 된 지금, 나는 무언가 달라진 듯하다. 속을 뒤집어엎는 화학 반응을 마치니 에너지가 고이고, 그것이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타자에 할애할 잉여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존 레논을 만나려면 오노 요코가 되어야 한다는 지론이 오래전 내게 있었다. 난 오노 요코의 위대함을 간과했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난 예전보다 오노 요코에 가까워졌고, 내게 달라붙으려면 존 레논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난 존 레논을 알아볼 안목과, 그럼에도 누구든 환대할 역량 또한 갖추었다.


마흔 즈음의 대전환기와 함께 타자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무성애 시대의 끝물을 보내는 내 앞에 유성애의 시대가 다시금 자기 차례란 듯 걸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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