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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비 Dec 13. 2022

클래식 전공자가 듣는 음악은,

클래식을 듣는 사람이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클래식을 즐겨 듣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근래 클래식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한 달에 한번 들으면 많이 듣는 건데, 솔직히 요즘은 세 달 안으로 들은 적이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클래식 연주회에 가본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주회였는데, 어느 홀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무척 컸고, 사람도 많았고, 밝았고 높았다. 생전 처음 간 고품격 연주회인데 기억나는 건 고작 이게 다이다. 베토벤 소나타는 감미로웠지만 무척 길었고, 긴 만큼 강력한 수면제였다. 베토벤 소나타가 그리 부드럽고 아름답기만 한 선율은 아니었을 텐데 나에겐 저 멀리서 들려오는 자장가 같았다. 엄청나게 졸았고, 연주회에 간 시간과 돈이 아까울 만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클래식 연주회에서 조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뮤지컬이나 오페라처럼 볼만한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들만 듣다 보면 잠이 들기 일쑤다. 특히 홀이 너무 멀어 시작도 전에 지치고, 따뜻한 온풍기까지 틀어주면 그야말로 잠자기 딱 좋은 환경이 된다. 


클래식 피아노 전공자인 나도 이런데 하물며 취미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클래식에 접근하기가 힘들지. 유튜브에 의하면 클래식은 잠자기 좋은 음악, 잠잘 때 듣는 음악, 태교 음악, 마음이 편해지는 음악일 뿐이지 평소에 즐길만한 음악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나름 클래식 전공자로써 말해보자면, 클래식은 알고 보면 단순히 힐링을 위한 음악은 아니다. 오히려 클래식 음악에는 단순히 힐링이 아닌 (조금 과장해서) 삶의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클래식 피아노 전공자인 나는 이제 클래식이 졸려서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의 무게 때문에 음악을 듣지 않는다. 물론 그저 배경음악으로 틀어놓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그 많은 감정에 휩쓸리게 되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 불필요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을 때는 웬만해서는 클래식을 듣지 않는다.


예를들어 첫사랑을 할 때, 슬플때, 우울할 때, 계절이 변화할때의 감성에 맞춰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면 그 감정이 증폭되거나 해소되는 효과가 있다. 사랑에 대한 음악을 들으면 그 감정을 더 느낄 수 있고, 우울한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에 위안을 느낀다. 알아 듣기 쉬운 가사로 직접 전달해주는 발라드나 k-pop도 좋지만 저 알수 없는 깊은 바다의 흐름에 나를 맡기면 자신도 몰랐던 또 다른 감정에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좋지만, 또 그것 때문에 평상시에는 피하게 되는 감정의 몰입. 나만 그런가.


오히려 요즘 듣는 것은 재즈 음악이다. 재즈는 또 클래식과는 다른 장르라 내가 잘 모르기도 하고, 마치 클래식의 '마음 편해지는 음악', '힐링 음악'같은 느낌으로 가볍게 듣기에 딱 좋았다. 주로 카페 매장음악을 듣는데, 아무래도 진짜 재즈랑은 깊이 면에서 다르겠지만 내 감정을 가볍게 유지시키는 데 적합했다.


역시 뭔가를 즐기기 위해서는 너무 깊게 파고들면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순적이게도 한 가지를 너무 깊게 파고들면 오히려 거기에서 멀어지게 된다. 배우면 배울수록 모자람을 느낀다. 듣는 귀는 높아지고 내 음악은 형편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즐기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즐기면서 하는 자를 천재라고 하나보다. 그렇게 클래식의 세계에서 반 이상 발을 빼게 된 나이지만, 그래도 몇 가지 추천해주고 싶은 클래식 음악이 있다. 그에 관해서는 다음에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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