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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세시 칼리 Oct 16. 2023

[지극히 사적인 공간 해석]  1. 독서실

독서실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손!


새벽 6시.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 보면 언니가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대학생이던 언니는 학교 갈 시간에 내가 집에 오지 않으면 독서실로

나를 깨우러 왔다. 물론 엄마의 강요에 의해서.


조용히 일어나 요와 이불을 개어 독서실 책상의 책장 위에 얹어 놓는다.

책장 위 먼지는 잘 닦아 주었던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 않을 나이다.

19살. 고3.

숨만 쉬어도 힘든 수험생 시절을 나는 어찌 보면 수월하게 보낸듯하다.

나에겐 독서실이란 공간이 있었으니.






 1998년.  인터넷 강의가 아닌 TV 프로그램 편성표를 확인하며 EBS 강의를 듣던 시절에 고3이었던

나는 중학교 때부터 동네에 있는 한샘학원 영어,

수학 단과반을 다녔다.

지금 기억으로는 수강료가 과목당 20,000원~25,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우리 집 형편에 특별한 과외나 종합반 강의는 들을 수 없었기에, 큰 불만도 없었다.

학원 다니는 게 재밌기도 했다. 학원엔 늘 좋아하는 영어 선생님이 계셨다.


고3이 되자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했다. 일명 야자.

1학기엔 야간 자율학습을 하다가 여름방학 무렵부터 야자 대신 집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처음엔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잠은 집에 와서 잤는데, 고3이라는 이유로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자고

아침에 집에 오겠다고 아빠를 설득했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빠는 어쩐 일인지 허락을 해주셨다.


어찌 보면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여자가 독서실에서 이불 깔고 잔다는 게.

아무리 남, 녀 열람실이 따로 있다지만, 누군가 나쁜 맘먹고 밤늦게 열람실 안에 들어와 무슨 일을 저질러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독서실 총무가 있다고 해도 독서실 총무는 보안 요원이 아닌데, 게다가 나이도 별 차이 나지 않는 기껏해야 대학생, 아니면 고시생이었을 텐데 말이다.

총무가 졸고 있는 틈을 타, 화장실 간 틈을 타 강도라도 들어오면, 성폭행범이라도 들어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도 그 당시엔 나라가 그리 흉흉하진 않았던지, 독서실 다니는 내내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고3, 여름방학. 그때부터 독서실은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우리 집은 방이 세 칸이었는데, 제일 큰 방은 부모님 방, 그 옆이 할머니방, 그리고

부엌 옆 격자무늬의 미닫이 문이 달린 작은 방이 언니와 나의 방이었다.

도시락 2개씩 싸 갖고 다니던 시절, 회사를 다니면서도 부지런한 엄마는 새벽이면 늘 새 밥을 지어 도시락을 싸주셨는데,  부엌 옆에 있는 방이라 압력솥에 밥 할 때 추 돌아가는 소리, 갓 지은 구수한 밥 냄새가 코 끝에 맴돌면 아침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언니와 사이가 좋았기에 둘이 쓰는 방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언니와 같은 방을 쓰는 게 좋았다.

하지만 언니와 둘이 쓰기엔 좀 작은 방엔 책상을 두 개 놓을 공간이 없었다.

책상과 책장, 그리고 언니와 내가 누울 자리 정도.

시험기간이 겹치면 언니는 늘 책상 자리, 나는 상을 펴고 공불해야 했다.






주로 상에서 공부하던 나는 독서실을 다니게 되니 독서실 책상이 너무 좋은 거다.

나만의 공간이 생겨서 좋다는 생각을 그 당시엔 뚜렷이 하진 않았지만, 나는 독서실 책상을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포스트잇에 수능 목표 점수, 목표 대학을 적어 붙여 놓기도 하고, 수학 공식, 암기 내용을 적어 놓기도 했다. 공간이 주는 행복감을 믿는다. 그때도 분명 행복했다.

독서실이 좋으니, 학교에 끝나자마자 독서실에 와서 책을 폈다. 공부를 하다가 쉴 때는 라디오를 들었다. 졸릴 땐 엎드려 자기도 하고, 자다가 깨서 다시 공부를 했다.


깜깜한 밤, 독서실 커피 자판기에서 믹스 커피 한 잔 뽑아 들고 건물 테라스; 말이 테라스이지 상가 건물 외벽에 만들어 놓은 창이 없이 외부로 뚫린 공간,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는 나처럼 커피를 마시는 4층 독서실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며 홀짝홀짝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와 밤공기를 나는 사랑했다.








독서실에서 미래를 꿈꿨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거라 믿으면서.

대학에 붙었다.

독서실에서 짐을 뺐다.


대학을 졸업했다. toeic 공부하러 또 그 독서실에 갔다.

입사를 했다.

독서실에서 짐을 뺐다.


퇴사를 했다.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독서실에 갔다.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독서실에서 짐을 뺐다.


그 후로도 여러 시험들에 떨어지고, 붙고를 반복했으며, 독서실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대학만 들어가면 뭐든 다 해결될 거라는 생각은

그 후에 입사와 퇴사, 여러 종류의 인간들은 만나며

깨졌지만, 10대와 20대를 생각해 보면 독서실이란 공간이 나에겐 참 특별했다.



지금은 독서실에 갈 일이 없어졌지만, 또 중요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난 스터디 카페가 아닌 독서실에 갈 것이다.


좋아하는 공간이 생기면, 생각이 달라지고, 기분이 달라진다. 어느 순간 삶이 달라질 수도 있다.

작은 공간이라도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한다. 독서실은 나에게 나만의 특별한 공간을 만들게 해 준 첫 번째 공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급기야 난 집에 가정용 독서실 책상을 들여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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