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를 비수기에 여행하는 사람의 특권은,
2022. 3. 12 - 3. 14 자그레브-스플리체
휴양지로 유명한 크로아티아의 3월은 비수기다. 영화 ‘아바타’ 촬영지로 알려진 플리크비체 국립공원은 눈이 채 녹지 않아 설산 같은 모습이었고, 수도 자그레브에서는 여행객이 우리 밖에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이 좋았던 건 함께했던 P와의 대화가 기억에 남아서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크로아티아 해안 도로를 작은 렌터카로 쌩쌩 달리며 온갖 노래를 들었다. 취향과 연애와 가치관에 대한 각자의 역사를 까발렸다. 에메랄드 빛으로 부서지는 플리크비체의 강물을 앞에 두고 난데없이 K팝 이야기를 하거나, 늦은 저녁으로 고급스러운 생선 요리를 먹으며 추억을 먹고사는 것이 바람직한지 토론하기도 했다.
한 나라를 비수기에 여행하는 사람의 특권은, 관광객들에 가려 지나치기 쉬운 작은 면모들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다는 거다. 우리는 자그레브의 동네 공원에서 이른 초봄을 느끼는 강아지를 만났다. 여전히 패딩 점퍼가 필요한 날씨였지만 3월은 3월이라고, 곳곳에서 꽃봉오리가 귀여운 시동을 걸고 있었다. 책가방을 한쪽에 던져 놓은 두 여자아이는 재잘대며 다이어리에 뭔가를 열심히 그렸다.
그 모든 낯선 나라의 익숙함을 관망하면서 휴대폰으로 백예린의 <Square>를 틀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초록 원피스 입은 그녀가 된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