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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Nov 14. 2023

제주의 이야기를 듣다

제주에 머무르며 '살면 살아지쿠다'라는 프로그램 사회를 보게 됐다. 제주 위미 지역 세 개의 예술단체, 이음새, 마음빛그리미, 넙빌레프로젝트는 "위미리 할머니들은 긴 세월 어떻게 살아오셨을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구술채록, 의복전시, 무용공연을 기획하였다.


사회를 봤던 무용 공연은, 할머니와 안무자들이 할망들의 삶의 이야기를 춤공연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린 작품이었는데 한국무용, 현대무용, 탱고, 힐링댄스 등을 선보였다. 모든 무대가 훌륭했지만 할머니와 안무자가 서로 손을 맞대어 춤을 추던 장면에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렸다. 손마디 마디가 틀어지고 어긋난 할머니의 고운 손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 나 역시 울컥했다. 내가 춤을 좋아하는 이유는 말하지 않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말소리가 담기면 우리는 말에 주의를 빼앗긴다. 말에 느낌이 져버린다. 말 대신 조용히 쓰다듬는 춤은, 몸으로 쓰는 시 같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온전히 지금 여기에서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원고를 다듬는 중, 기획자, 안무가들과 이야기 나누며 들었던 할머니들의 삶의 이야기. 보기에 아름답기만 한 제주에서 죽어지게 힘든 삶을 살아낸 이야기. 1초도 안 아픈 순간이 없다는 말씀. 꿈이 뭔지 기억이 안 나, 사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어, 담담한 말씀.


10월 사과이모 북클럽에서 읽었던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하와이를 좋아하면 하와이에 오면 안 되는 거였어. 제주도를 아끼면 제주도에 덜 가야 하는 것처럼". 이 문장을 여러 번 읽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무슨 의미일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던 걸까. 나의 해석은 이러하다. 놀고 즐기고 돈 쓰고 가는 것만이 아끼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 그곳에 대해,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알려고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 이곳이 아름다운 제주, 가 되기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기록하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해야 한다. 할머니들 개개인의 삶이 휘발되지 않도록 더 관심을 기울이고 귀를 열어야 한다. 고개를 돌리고 몸을 기울여 들어보는 것. 궁금해하며 알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이번에 알았다. 제주 4.3 항쟁이 7년 6개월간 지속되었다는 것. 사람이 사람에게 희망이기도 절망이기도 했던 아픈 시절이 있었다는 것. 그 시절을 버텨낸 꽃 같은 이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 더 늦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


제주를 사랑한다는 건, 제주의 이야기를 듣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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