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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Nov 22. 2023

자기 자신을 존경하는 느낌


책 치유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운영하고 있는 북클럽이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집단상담의 형태를 띤다면, 책 치유상담은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개인상담 형태로 요청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한 문장이나 한 챕터를 가지고 이렇게 긴 사유가 이어질 수 있구나, 놀랄 때가 많다. 그런 시간은 결국 자신의 현주소, 지금 내가 걸려 넘어지고 있는 나무뿌리가 무엇인지 가리킬 때가 많다.


이번 달 P양과 함께 읽고 있는 책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이 책은 제자 치가 옛 스승 모리 교수를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인데 세상, 가족, 죽음, 자기 연민, 감정, 사랑 등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그동안 무엇을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훌륭한 책이다. 주인공 모리 교수처럼 나 역시 청년들과 오랜 시간 함께 했다 보니 그의 삶의 철학은 상담자인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문장은 번역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세 번째 시간에 P양이 말했다. 그녀가 의문을 가지게 된 건 모리 교수가 '돈'에 관해 이야기해 주는 부분이었다. 모리 교수는 무언가를 소유하는 행위를 통해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진짜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은,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순간이라는 것. 시간을 내주고 관심을 보여 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행위.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타인에게 뭔가를 주는 것이야말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고, 깊은 만족감을 준다고 그는 여러 번 강조하여 말한다.


“외로운 노인과 카드놀이를 하면 새롭게 자기에 대한 존경심이 생길 거야. 왜냐하면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하게 되니까 말이야.”


그녀는 이 문장에서 '자기에 대한 존경심'이란 어떤 감정인지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존경심'의 사전적 정의는 '남을 공경하고 높이 받들어 모시는 마음'인데, 우리나라 정서상 자기를 존경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녀의 말을 듣고 원서를 찾아보니 영어로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었다. 'you find new respect for yourself, because you are needed.' 영어 단어 'respect'는'존경, 경의, 존중'뿐만 아니라 '중시하다, 자존심을 갖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나를 존중하고 존경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녀 말대로 번역에 오류일까? 동서양의 정서의 차이일까? 모리 교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녀와 나는 서로 질문하고 답변하며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기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은 어떤 걸까? 그녀는 '존경'이란 단어가 좀 커다랗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우리말로 바꿔 말하자면 '난 내가 정말 좋아!'의 느낌보다는 '아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의 느낌에 가깝지 않을까. 나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나의 승진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을 때 나에게 10포인트를 준다면, 바쁜 시간을 쪼개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서 밥퍼 봉사를 한다든지 자선 활동을 하는 나에게도 같은 포인트를 주게 될까? 그녀에게 묻자 그녀는 아니라고 답했다. 눈에 보이는 보상은 없지만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느껴질 것 같다고 답했다. 점수는 두 배를 더 주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쓸모 있고 쓰임이 있을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허기가 채워지는 것 같다. 가슴에 사랑이 채워지는 것 같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데에 나를 쓰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큰 대의에, 좀 더 세상이 좋아지는 쪽에 내가 쓰였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이 나 스스로를 존경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비록 금전적 보상이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행했을 때는 정신적 보상이 돌아온다. 마음이 넉넉하고 풍성해지고,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따뜻한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 풍요롭고 생생한 감각이 내 삶을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되니, 그 어떤 보상보다 값나가는 보상이 아닐 수 없다.


죽고 나서 천국에 가면 신이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한다. '너는 이번 생에 태어나 너의 재능을 잘 썼느냐?' 이 질문에 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신이 묻는 재능은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한 쓰임만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하나 잘 살려고 우리가 이 불가해한 세상에 태어났을 리가 없다. 나를 존경한다는 건, 이토록 귀한 나를 세상에 기꺼이 내맡기는 것. 세상 곳곳에 내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것이 아닐까.


상담을 마치며 P양이 말했다. “제 재능을 더 발견해야겠네요. 잘 살아봐야겠네요. 더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겠네요.”


이런 시처럼 아름다운 화답을 듣는 순간,

내가 잘 쓰이고 있음에 깊이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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