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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Nov 26. 2023

거절당하며 살고 있구나


내 마음이 뭔지 몰라서 '무거움'으로 퉁치고 배회하는 그런 날이 있잖아. 다른 사람 이야기는 가만히 들어보면 어느 지점에서 어떤 생각 때문에 어떤 감정으로 이어졌는지 핀셋으로 집어내듯 잘 보이는데, 내 마음은 흐릿하게 잘 안 보이는 그런 날. 알 수 없는 무거움에 서성이다가 가까운 지인에게 전화를 했어.


"무거워서 전화했어..."

"그랬구나.. 괜찮아, 뭐든 말해봐."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그녀가 이렇게 말했어.

"속상했겠다. 당황스럽고 무안했을 것 같은데? 지금 가슴은 어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서 깜짝 놀랐어. '아, 내가 속상했구나... 그 순간 많이 당황하고 무안했구나..' 그제야 내 진짜 감정을 만난 느낌이랄까. '무거움'으로 퉁쳐버린 감정들은 내 마음에서 정처 없이 배회하다가 마음에 바람 부는 날, 불쑥 등장해서 나를 몹시 흔들어버리곤 하거든. 다행히 오늘은 그녀 덕분에 마음에 남겨두지 않고 흘려보내게 되었네.

“고마워...”

“고맙긴, 원래 본인 감정은 잘 안 보이잖아. 내 감정은 네가 더 잘 들여다봐주잖아.

그런가.. 많이 무거울 땐 도대체 내가 왜 이런가, 알아차리기가 힘들더라고. 네가 내 감정에 하나하나 이름 붙여주니까 아, 내가 그랬구나.. 알아져서 좋았어. 가슴에 무언가 스르륵 녹아지면서 흘러가는 느낌이야.”

요즈음 네가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종종 했어. 직장 다닐 때랑 다르게 독립하고 나니 안전한 울타리가 사라진 느낌이라 외롭고 힘들겠구나, 생각했지. 나도 처음엔 많이 힘들었거든. 자존감도 떨어지고. 아무리 작은 사업이라도 혼자 꾸려간다는 게 부담이 많이 되잖아.”

“맞아. 큰소리 치고 퇴사하고 혼자 해본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참 녹록지가 않네. 밖은 정글이야, 이런 말도 떠오르고. 매일 기획안 쓰고 홍보하고 알리고. 그러면서 매일같이 거절당하는 느낌. 참 세상 일이 내 마음 같지가 않구나 싶어.”

에고.. 그랬구나. 거절이 이어져서 힘들었구나... 그래도 그게 네 존재 자체가 거절되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 기운 내.. 우리 모두 조금씩 거절당하며 살고 있잖아.”


힘들겠다는 공감보다 나는 마지막 말이 위로가 되었어. 그녀의 고단한 삶이 담긴 단단한 말이어서 그랬을까. 그러니까 그런 느낌.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구나.. 왠지 안도하게 되는 마음. 가까운 관계에서, 하고 있는 일에서,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 조금씩 거절당하며 살고 있구나... 거절은 늘 미세한 슬픔을 데려오는데 가끔은 그런 슬픔이 온 줄도 모르고 사는 것 같아.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이 모여진 것이 인생이라면, 그 사이사이에 우리는 '거절당한다'는 상태를 경험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문득,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상처를 주기도 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내가 거절한 것도 기억하면서 살아야 어른이라는 의미인 걸까. 그동안 살면서 많이 거절하고 상처를 주었겠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런데 지금의 나는, 내가 했던 '거절'에 대한 반성보다 '받아들임'에 대해 생각하려고 해. 사람에게, 세상에게 끝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할래. 나를 있는 그대로 따스하게 허용해 주는 시간, 공간, 사람들을 더 많이 생각할래. 그렇게 일단의 나는, 사랑 쪽으로 기대는 것을 선택할래. 그러고 나면, 좀 더 어른의 품이 될까.


세상이 온통 나를 거절하는 것 같은 그런 날은,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어야지. 그리고 전화를 해야지. 목소리가 따뜻한 사람에게. 여보세요, 말고 다정하게 어... 하는 사람에게. 밤에는 메일도 써야지. 힘든 날이었다고 일러바치는 유치한 편지에 흉보지 않는 사람에게. 그러면 연결되는 느낌이 들겠지. 혼자가 아니고 이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느낌. 사랑받고 있구나, 안도하면서 나는 오늘 잠들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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