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이모 Nov 29. 2023

결혼기념일은 11월


선생님, 11월은 가을이에요? 겨울이에요?


글쎄, 가을과 겨울 사이? 계절이 가을과 겨울 양손을 잡고 노닐다가 덜컥 겨울 손을 꽈악 잡는 때가 아닐까. 그건 왜 물어보는데?


그냥 뭔가 11월이 애매한거 같아서요. 저는 11월이 별로더라고요. 한번 들어보세요. 우선 날이 스산하고 햇님도 잘 안 보여요. 꽃도 안 보이고 나무들도 다 추워보여요. 낙엽도 다 떨어지고 멋이라곤 없어요. 뭔가 괜히 춥고 마음에 바람이 휭 불고요. 11월은 얼른 지나갔으면 하는 달이에요. 12월은 연말 분위기도 나고 성탄절도 있고 들뜨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11월이 더 별 거 없게 느껴져요. 12월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간신히 버티면서 지나가는 느낌이에요. 11월한테는 미안하지만 11월을 좋아하는 건 좀 무리가 있어요. 결정적으로 쉬는 날이 없어요. 명절도 없고, 공휴일도 없고, 크리스마스처럼 기다려지는 날도 없어요. 그냥 아무것도 없는 달 같아요.


그러네, 그런 11월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네.


그래서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요. 계속 평생토록 11월을 싫어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어떤 생각을 해 봤어?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없는 데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날씨와 쉬는 날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까요. 대신에 제가 만들기로 했어요. 기념일을요.


어떤 기념일?


나중에 남자친구가 생기면, 11월에 태어난 사람이면 좋겠다는 건데요. 그럼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이 11월이니까 얼마나 좋겠어요! 선물을 준비하고.. 근사한 날을 보내고. 그러다 보면 11월은 순삭. 근데 그건 또 좀 그런 게요. 만나는 사람마다 저기요. 혹시 생일이 11월이신가요?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11월생이 아닌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걱정이고요.


아... 큰 일이네. 그럼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래서 또 곰곰이 생각했는데요. 결국 제가 제 인생에 중요한 결혼기념일을 11월에 주기로 했어요. 나중에 나중에 결혼을 11월에 하려고요. 남자 친구한테 다른 거 내가 양보할테니 결혼하고 싶은 달은 내가 원하는 데로 해달라고 연애할 때부터 이야기해 두려고요. 우선 그때까지 11월을 너무 많이는 싫어하지는 말고 막 스산하고 기분 안 좋은 날은 아,  11월에 결혼할 거지, 이렇게 제 기념일을 상상하면서 11월을 보내려고요.


와... 멋지다. 너.


인생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라고 선생님이 그랬잖아요.


허허.. 그랬나.. 근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만들 줄은 몰랐네. 나중에 나중에.. 선생님도 초대해 줘.  근데 그 나중에 나중에가 좀 진짜 나중이긴 하다. 너 올해 몇 살이지?


14살이요.

이제 한 달만 있으면 15살이에요!


와...부럽다. 너.



_

겨울을 겨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한 듯 해도, 돌이켜보면 그런 시선을 갖지 못한 적이 더 많다. 봄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며 어서 사라져야 할 계절이다. 그러나 조급해한들, 겨울은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한동안 떠날 것이다. 


-한정원, <시와 산책>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거절당하며 살고 있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