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그랬다. 엄마와 동생은 엄살이 심했다. 둘은 조금만 아프면 병원에 의지했다. 반면, 나는 어지간히 아파서는 아프다는 말을 잘 하지도 않고 병원에도 잘 가지 않았다. 물론 나이는 무시할 수 없는지 최근엔 하루가 멀다하고 병원행이지만. 그런 엄마가 협착이 아주 심해질 때까지 꾹꾹 참고만 있다가 드디어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엄살 많던 엄마가 딸 눈치 보며 사느라 남들보다 두 배로 참고 살았다는 사실이 화가 나면서도 몹시 미안했다.
수술을 하기로 한 때는 바야흐로 의료파업의 시기. 수술을 결정하고는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만 했지 의료 파업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의료 파업을 인식하지 못할 만도 한 것이 남들은 수술 날짜 잡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우린 2주나 앞당겨졌다. 의료 파업을 실감한 것은 입원을 하면서부터였다. 뭔가 전달이 매끄럽지 못하고, 간호사들이 몹시 바쁘고 힘들어 보인다는 점 때문이었다. 아무리 간호통합병동이라지만 환자가 수술이 잘 되었는지 상태가 어떤지 보호자는 환자 입을 통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피드백을 고령의 환자가 얼마나 알아듣는지 답답한 경우가 숱하다. 바쁜 간호사들을 귀찮게 하기도 미안해서 알 권리를 포기하고 있는 중인데 그게 또 생각날 때마다 화가 난다. 환자가족이 되니 지금의 의료 파업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의료개혁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의료파업에도 반대한다.
엄마의 척추협착증 수술은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에 걸쳐 실행되었다. 첫번째 수술은 협착이 있는 요추 네 마디의 신경을 늘이고 나사를 박는 수술이고 마취 때문에 1시간, 수술은 2시간 20분이 걸렸다. 마취가 깨어난 엄마는 몹시 고통스러워 하였고, 마약성 진통제를 맞고서야 말이나마 이을 수 있었다. 원래도 엄살이 심한 사람이니 이렇게 아픈 통증을 어떻게 참아낼까,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수술 사흘째 되는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섬망인듯 아닌 듯 어머님이 이상하니 돌봐주면 좋겠다고. 그래서 24시간 상주 간호를 신청하고 하룻밤을 같이 묵었다. 같이 지내보니 예민해져 짜증이 많아진 것이지 섬망 증상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말동무도 해주고 마음 안정도 시켜주고, 또 여러 날이 지나니 점차 평소의 엄마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두번째 수술이 있었다. 지난 번 수술 땐 수술하는 날 연가를 내 수술 전후를 함께 있어줄 수 있었는데 이번엔 남편이 그 역할을 대신 했다. 마음 같아선 이번 주 내내 연가를 내서 함께 있어주고 싶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 가능한 날인 낼 모레에나 겨우 연가를 냈다. 역시 하룻밤을 같이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엄마에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내가 필요할 텐데 답답하고 걱정이 된다. 두번째 수술이 훨씬 더 아프다던데, 엄마는 어떻게 잘 견디고 있는지 몹시 불안하다. 잠깐이라도 들여다보고 싶지만 상주할 것이 아니라면 병실에 들어갈 수도 없고, 아직 힘든 엄마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어 마음만 졸이는 중이다. 두번째 수술은 옆구리 쪽으로 진행되어 인공뼈를 넣는 수술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등쪽으로 하는 수술보다 출혈도 적고 안전하지만 옆구리 근육통이 등근육통보다 심해서 환자는 더 아플 거라고 했다. 지금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할까! 요 며칠을 엄마가 잘 견디어 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