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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Jan 08. 2022

이대리, working die가 나오게 기도 좀 해줘

반도체 엔지니어들은 이렇게 삽니다

입사 후 4~5년쯤 되었을 때였다. 부서 전체 회의가 있던 날, 부장님께서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이대리가 교회에 다니니까 Working die가 나오게 기도 좀 해줘"라고 하셨다. 부장님의 뜬금없는 요청에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난처한 듯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니 그렇게 기대하던 working die가 간밤에 나왔다고 했다. 동료들은 내게 이대리 기도발이 통했나 보다고 얘기했고, 과장님은 "너는 이제 일하지 말고, 회의실에 들어가서 기도나 해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반도체 제작은 실리콘 웨이퍼(Wafer)로 시작되는데, 웨이퍼는 다이(Die)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사각형 조각으로 나뉘어 있고 여기에 회로가 제작되어 있다. Working die 확보란 제대로 동작하는 다이를 하나라도 얻는 것을 말한다. Working die가 나와야 설계가 제대로 되었다는 검증이 되고 이대로 일을 계속해도 되겠다는 신호로 여겨진다. 새로운 반도체 개발에서의 중요한 이정표 중의 하나이다. 특히 계획한 일정에 맞춰 working die를 내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성과급이 연동되어 있어 working die 확보 여부는 반도체 개발 엔지니어들의 초미의 관심사이다. 게다가 프로젝트 책임자급일 경우엔 working die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으면 자리까지 위험해질 수 있으므로 working die가 계획한 일정대로 나오지 않으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위의 상황에서는 계획한 일정에 비해 working die 확보가 한 달 이상 지연되었고 부장님은 연일 초조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었다.



첨단 산업을 개발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상황에 많이 좌우된다. 최대한 우연의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 반도체 엔지니어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날씨의 변동에 영향받지 않기 위해 반도체가 생산되는 공장의 온도 및 습도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고, 반도체를 생산하는 설비의 상황도 최대한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천여 개에 가까운 공정 과정을 거치며 제대로 제작되고 있는지 꼼꼼하게 공정을 확인하며 관리한다. 그러나, 갈수록 반도체 공정의 미세화가 진전되면서 점점 업무의 난이도는 증가하고 있고, 온갖 노력을 기울임에도 예상치 않게 설비에서 Particle이 쏟아지기도 하고 사람의 실수가 발생하여 공정이 꼬이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회사는 몇십 년째 반도체 개발을 진행하고 있지만 working die를 확보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말 기도의 힘에라도 의지하고픈 마음이 간절해지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간절함은 그만큼 업무에 대한 열정의 지표이기도 하다. 최대한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예상치 못한 불상사마저도 발생하지 않도록 비는 마음이다. 이렇게 반도체 엔지니어들의 노력과 열정과 간절한 기도가 어우러졌기에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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