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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반장 May 10. 2023

이 나이에 쌩초보가 되기로 했다.

우드 카빙 도전기 ① 프롤로그

  ‘지천명(知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나이 50을 말하는 것이지만 내용은 꽤 심오하다. 공자가 지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표현인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하늘의 명을 안다'라는 뜻이다. 하늘의 '명(命)'은 일개 중년 아저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이 50이 넘으면 좌고우면(左顧右眄)), 좌충우돌(左衝右突) 하지 말고, 하늘의 뜻을 헤아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이 선 삶을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만 저절로 먹었을 뿐, 공자께서 말씀하신 지천명의 세계에 다다를 만한 연륜을 얻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리 들이대 보고, 저리 저울질을 하다가 해가 저물어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날이 거지반이니 지천명은 요원하다. 저절로 먹은 나이를 지천명에 이른 것으로 착각하고 여기저기 자기 기준만 들이대는 꼰대질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혼자 나무를 깎기 시작했다. 작은 칼과 조각도 따위를 가지고 숟가락이나 접시, 그릇 같은 소소한 생활재를 만드는 것이다. 나무를 이용한 조각의 일종인데 ‘우드 카빙(Wood Carving)’이라고 하는 외래어를 보통 사용한다. ‘목공’과는 무슨 차이가 있냐고? 목공은 적절한 연장이나 기계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원목 가구나 기물을 만드는 것이라면 ‘카빙’은 말 그대로 조각에 가깝다. 작은 칼과 조각도 몇 자루를 이용해 깎고 다듬어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낸다. 목공이 연장을 다루는 능란한 작업이라면, 카빙은 손놀림으로 만드는 생활이다.


 이게 나름대로 역사가 깊을 것이라 유추해 불 수 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새총이나, 연을 날릴 때 쓰는 얼레 같은 것이 이렇게 나무를 깎고 다듬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언제 누 깎았는지 모르는 나무 기러기 한 쌍 같은 것도 그렇고 명절에 가마니 거적 위로 던져 올린 윷도 그렇다. 언제인지 헤아릴 수 없겠지만 오랫동안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손을 거쳐 나무를 깎고 다듬어 생활에 필요한 기물들과 마음을 담아낸 조각들이 이어진 것은 분명하다.      


 ‘지천명(知天命)’하고는 무슨 상관인 건가? 당연히 상관이 없다. 우드 카빙이 무슨 연령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니깐. 다만 이건 지금의 나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단지 몇 차례 나무를 깎아본 것이 다 인데도 금방 알겠더라. 마음이 거친 날은 칼질도 거칠다. 심란한 날은 곧아야 할 수저 손잡이가 삐뚤빼뚤하고, 괜스레 들뜬 날은 조각도가 제멋대로 날아다닌다. 나무가 오랜 세월 켜켜이 쌓아 놓은 나이테에 방향을 맞추고, 풍파를 겪은 단단한 옹이는 살살 어루만지며 다듬어야 비로소 쓸모 있는 기물이 겨우 만들어진다. 그게 또 소소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무를 다듬는 이 우드 카빙은 지천명의 가운데로 들어선 자신을 톱아보게 한다.


어이! 어이! 나뭇결을 살펴보라고. 옹이를 돌봐주라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이 나이에 쌩초보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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