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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반장 May 18. 2023

당신의 숟가락은 안녕하십니까?

쌩초보 우드 카빙 도전기 ②  숟가락 깎기

  무작정 우드카빙 도전. 스스로 부여한 첫 번째 과제는 숟가락 깎기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무튼지 밥벌이를 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는데, 정작 이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숟가락을 들여다볼 일은 없었다. 아니 관심조차 갖지 못했다는 게 맞겠다. 내게 숟가락 깎기는 숟가락을 이해하는 과정의 어디쯤이다.

      

  숟가락은 그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도구였다.  다만 위생적이고 실용적이며 가격도 싸다. 밥벌이로 밥을 마련하고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는 행위에 이 숟가락이 개입하는데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밥을 퍼 나르는 일에만 집중할 뿐이다. 분명 식구들 숫자보다는 많은 수의 숟가락이 집에 있을 테지만, 집안 숟가락의 개수를 정확하게 헤아릴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늘 쓰는 수저통에, 싱크대 서랍 한 구석에 여유분으로, 언제 장만한 것이지 모르는 식기세트에도 새것이 한 벌씩 자리 잡고 있다. 오늘의 일상이 숟가락을 드는 일이며 숟가락을 설거지하고 정돈해 놓아야 또 내일의 밥벌이로 이어지게 될 테니 흔하디 흔한 이 필수품의 무게는 가벼워야 한다. 숟가락을 사기 위해 별도의 노동이나 저축을 하지 않아도 집안 어딘가에 반드시 숟가락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흔한 스테인리스 숟가락을 두고 이걸 나무로 깎는다고 나서니 여기저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그걸 손으로 깎는다고?’. 충고 비슷한 것도 이어진다. ‘그런 건 사서 쓰는 거야’. 가끔은 이런 질문들이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을 왜 어려운 일로 만드냐는 항의처럼 들리기도 한다. 순화하면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 정도. 딱히 대답할 말이 없기도 하다. ‘그냥 재미로 하는 거죠’, ‘깎는 맛이 있어요’ 정도. 껄껄껄 웃고 넘어가면 편할 일이지만 나는 인상이 상냥하지 않고 웃음소리 또한 호탕하지 않으니, 남에게 위협을 가하는 듯 보일 수 있어 늘 조심하는 편이다. 

     

  뭔가 진짜 이유가 있는 모양이라고 의심받을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애초에 없었다. 그저 나무도 숟가락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스테인리스보다 성격이 온순할 것 같은 나무를 깎고 다듬어 모양을 잡아나가는 손작업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조각도와 카빙나이프를 이용해 나무를 덜어내는 작업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면 숟가락의 모양이 보이고 숟가락의 본질에 조금 다가서게 된다. 밥이나 국물을 담아 입으로 전달하기에 적당한 모양인지, 입에 닿는 감촉이 차갑거나 날카롭지 않은지, 손잡이의 감각이 부드럽게 작동해 음식을 전달하는 과정이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같은 것들이다. 이때 알게 되었다. 오직 이 과정을 경험하기 위해 숟가락을 깎았구나.

      

  무수히 반복된 노동을 통해 나무 숟가락에 섬세한 카빙자국이 새겨진다. 이 자국은 오늘도 어김없이 밥벌이를 수행한 몸에 밥을 전달해 주는, 숟가락의 본질에 대한 각인(刻印)이다.      





숟가락 카빙노트

     

1. 나뭇결을 따라 숟가락 본을 그려서 잘라내는 밑작업을 해둔다. 숟가락 깎기의 재미는 역시 오목한 수저 안쪽이다. 나무가 동그랗고 오목하게 되도록 조각도를 이용해 덜어낸다. 이때 나뭇결과 직각방향이 되도록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조각도를 움직여야 한다.


손잡이 부분을 미리 재단해두면 작업이 수월하다


나뭇결의 직각방향으로 조각도를 움직여 나무를 덜어낸다

      

2. 안쪽의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바깥쪽을 덜어내 모양을 만들어 나간다. 언덕에서 썰매를 타듯이 위에서 아래로 작업한다. 카빙나이프로 작업이 어렵다면 평조각도나 아사도를 이용한다. 


3. 손잡이와 만나는 부분을 너무 많이 깎아내면 이후 모양을 잡아나가는 과정에서 너무 가늘어질 수 있다. 조금 여유를 두로 작업하는 것이 좋다. 손잡이는 모양을 결정하고 조금씩 깎아나가는데 나무가 뜯기지 않도록 결방향에 유의해야 한다.         




4. 조각도나 카빙나이프, 사포로 수저의 바깥 부분을 둥글게 잡아주고 여기에 맞춰 안쪽을 마무리해 준다. 역시 결방향에 유의해야 한다.

     



5. 결을 정리하고 미네랄 오일을 듬뿍 발라 하루동안 말려서 사용한다.      


많이 부족한 쌩초보의 숟가락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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