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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반장 Jun 01. 2023

깎기. 자르기. 덜어내기

쌩초보 우드 카빙 도전기 ③ 버터나이프 깎기

  연필을 처음 깎았던 날을 떠올렸다. 언제 어디서 인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그 느낌만은 손끝에 남아있다. 기다란 육각형 연필에 칼날을 대고 아주 조금씩 힘을 주면 작은 조각들이 깎여 나가고 이윽고 흑연가루가 소복이 날렸다. 연필을 손 안에서 굴려가면서 이 작업을 반복하면 연필의 중심에 있는 흑연이 마치 산봉우리처럼 제 모습을 드러낸다. 비로소 연필이 연필다워졌으니 깎기는 분명한 쓰임새를 확정(確定)하는 작업이다.

      

  덜컥 책부터 한 권 사고 인터넷 영상을 통해 글과 눈으로 우드카빙을 시작한 쌩초보가 이번에는 버터나이프를 깎아보겠다고 나섰다. 딱 연필 길이 정도로 단풍나무 한 조각을 잘라 냈다. 이 작업을 보통 ‘블랭크 제작’이라고 하는데 단순한 작업 같지만 나름 주의를 기울인다. 나무의 결방향을 잘 찾아보고 자르는 방향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를 자르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목공을 시작하고 나니 이 자르기에도 구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뭇결의 수평으로 잘라내는 것을 ‘켜기(Rip cut)’라고 한다. 이는 나무가 자라나면서 생긴 결을 그대로 유지시킨다. 나뭇결의 수직방향으로 잘라내는 것은 ‘자르기(Cross cut)’라고 한다. 나무가 성장한 방향을 직각으로 끊어내어 새로운 쓰임새를 획정(劃定)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켜기’와 ‘자르기’를 통해 나무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쓰임새로 변신한다.

      

  나뭇결을 살핀 블랭크를 완성했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카빙(carving)’의 시간이다. 밀어내어 깎고 잡아당겨 깎는다. 돌려가며 깎고 파내듯이 깎는다. 수십 번에도 되는 일이 아니어서 꽤나 공들여 반복해야 한다. 아직 노동에 길들여지는 않은 손이 아려오고 물집이 잡히기도 한다. 칼날이 무뎌지고 조금씩 닿아 없어진다. 나무는 깎이고 깎여 점점 기물의 형상을 갖추어간다.


  가구를 제작하는 목공이 연결하고 붙이는 과정이라면 카빙은 일관되게 덜어내는 과정이다. 더하고 더해 서 더 풍성해져야 좋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카빙은 이 반대의 길로 천천히 단호하게 나아간다. 덜어내야 그 모양이 드러난다. 덜어내고 덜어내면 그 용도가 분명해진다. 세상 거꾸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쓰임을 확장(擴張) 해 나가는 선명한 일이다.  



        



버터나이프 카빙노트     


1. 블랭크 만들기. 목재에 버터나이프 모양을 연필로 그리고 모양대로 잘라냈다. 결의 방향대로 작업했는데 구별하기 어렵지 않았다. ‘밴드쏘’를 이용해 곡선 부분을 가공해 놓으면  작업이 수월하다.
 

구입한 책에서 따온 버터나이프 디자인.  이 책에 있는 모든 작업을 다 해보려고 한다.



2. 카빙나이프를 이용해 조금씩 나무를 깎아낸다. 깎다가 반대 반향의 결을 블랭크를 돌려 반대 방향에서 다시 깎는다. 작업하는 도중 여러 번 엇결을 만나게 된다.

작업 중에 칼이 나가지 않고 결에 걸리면 칼질을 멈추고 돌려서 순결방향으로 작업한다. (사진은 다른 버터나이프 작업)

   


3. 조금씩 작업하다 보니 버터나이프의 모양이 드러났다. 손잡이 부분을 동그랗게 깎기가 수월 치는 않아 꽤 인내심이 필요하다.
  

메이플 (단풍나무) 버터나이프가 완성됐다.


4. 손이 아파질 때쯤 버터나이프가 완성됐다. 400방 사포로 다듬고 미네랄 오일을 듬뿍 발라 하루를 말린 후 사용한다.

        

연이어서 같은 디자인, 다른 나무 (퍼플하트) 작업. 너무 단단한 나무라서 쌩초보에게는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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