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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움파트너스 Oct 14. 2021

브랜딩회사에서 만든 브랜드네임 중 제일 비싼 이름은?

Ch5-1. ‘한남 더 힐’에 ‘the’가 없었다면




‘브랜딩회사’에서 ‘브랜드네임’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말하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럼 너네 회사에서 만든 브랜드네임 중에 제일 비싼 이름은 뭐야?”




우리 회사는 클라이언트로부터 의뢰를 받아 전문적인 ‘브랜딩’을 대행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엔 당연히 돈이 오고 간다. 하지만 이 질문은 우리가 클라이언트로부터 작업의 대가로 얼마를 받았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 만든 브랜드이름을 달고 출시한 제품들이 시장에서 얼마나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지다.


우리회사 포트폴리오엔 이런 세속적인 질문에 딱 걸맞은 대답이 준비되어있다!




요즘 들어 매일 같이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한국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한남 더 힐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남 더 힐’ 아파트의 최고가는 82억이며, 전체 거래가는 2조 1천 547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참고로 이 아파트의 가장 꼭대기에는 L그룹 회장님이 살고 계시다. (2021년 7월 12일 SBS 보도)




우리 회사에서 작업한 또 다른 아파트 브랜드네임에는 지난 회에서 소개했던 푸르지오Prugio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한남 더 힐은 ‘너무 창의력이 없는 이름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 참고로 최근 여러 게시판에서 화제가 되었던 한 유머글에서는 ‘아파트 이름 쉽게 짓는 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는데,


        ‘주변에 산이 있으면 XX Hill 강이 있으면 XX River 지하철이 있으면 XX Metro’


한남 더 힐도 산에 위치하고 있으니, ‘더 힐The Hill’이라는 브랜드네임은 별 수고 없이 지어진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 품격을 만드는 건 ‘편안한 자연스러움’



예전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명품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진짜 부자인지 보려면 갑자기 비가 내릴 때 잘 관찰해 보라고. 영끌하여 명품가방을 산 사람은 자신은 비를 맞아도 가방은 맞지 않도록 꼭 껴안고 뛰어가지만, 진짜 부자들은 가방을 우산대용으로 써서 비를 피한단다. 진짜 부자들은 비싸다는 이유로 가방을 모시고 다니지 않더라는 이야기다.



요즈음에도 비슷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혹시 인터넷에서 ‘리치와 슈퍼리치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대략 비슷한 사진을 아래에 첨부해 보았다.



*왼쪽은 영화 <위대한 개츠비> 중 리치한 디카프리오, 오른쪽은 슈퍼리치 마크 주커버그 부부



리치피플은 화려하게 차려 입고 호화스러운 파티에서 샴페인을 마시지만 슈퍼리치피플은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자유분방하게 거리를 산책한다. 


그러니까, 적당히 돈이 많은 사람들은 보이는 데 신경을 쓰지만, 무지막지하게 돈이 많으면 그냥 나 편한 게 최고라는 거다. 


슈퍼리치와 리치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한 방은 ‘편안한 자연스러움’이다. 쉽게 말하자면, ‘너무 힘을 주면 없어 보이게 마련’인데, 이는 브랜드네임도 마찬가지다. 고가의 제품일수록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브랜드네임’이 오히려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남 더 힐’이라는 브랜드네임도 힘을 뺀 자연스러움으로 한층 더 격조 높은 품격을 어필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만약 ‘한남 더 힐’이라는 브랜드네임에 정관사 the가 빠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때도 지금과 같은 고급감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 




먼저 ‘힐’이라는 단어를 한 번 살펴보자.



80년대생인 RA에게 ‘’이라는 영어단어를 처음으로 ‘부촌’으로 각인시킨 것은 ‘비버리힐즈의 아이들(Beverly Hills 90210)’이라는 미국드라마였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FOX사에서 방송되었던 이 드라마는 미국의 대표 부촌 중 하나인 ‘비버리힐즈Beverly Hills’에 사는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다루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었다. 


유행은 역시 돌고 도는 걸까? 지금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비버리힐즈의 아이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MBC에서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 ‘서울의 달’이 방영됐었다. 우리나라는 워낙 산과 언덕이 많은 지형이어서 그런지, ‘언덕’이라고 하면 비버리힐즈 같은 부촌보다는 정겨운 달동네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채시라, 한석규, 최민식 주연의 <서울의 달> 주연진 뒤로 달동네 풍경이 보인다



같은 언덕인데, 왜 어느 지역은 부촌이 되고 어느 지역은 달동네가 되는 걸까?




언덕은 지형상 대개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거주를 피하고픈’ 요인이 된다. 


하지만 가족구성원들이 전부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면!? 언덕은 ‘생활이 불편한 곳’이 아니라 오히려 경관 좋고, 한적하며, 도심 내에서도 비교적 공기가 깨끗하고, 사생활이 보호되는 주거에 유리한 조건들을 다수 갖춘 곳이 된다.   




그러니까, 단순히 ‘힐’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촌도 달동네도 될 수 있으니 ‘고급감’이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비버리힐즈’처럼 부촌의 대명사이면서 동시에 지명에 ‘언덕’을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없지만, 비버리힐즈에 버금가는 언덕 위의 부촌은 여럿 존재한다. 개중에서도 한남동은 이미 명실공히 재벌가들의 주거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한남’과 결합되었기 때문에 ‘힐’은 달동네가 아닌 ‘부유한 주거지’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정관사 the까지 합세하니, ‘의심할 여지 없는 바로 그곳’을 연상시키며 한남 더 힐이라는 브랜드네임은 ‘부촌의 고급아파트’라는 핵심정체성을 아주 직관적이면서도 편안하게 전달하게 되었다. 




만약 한남 더 힐이 그냥 ‘한남 힐’이었다면... 슈퍼리치가 되기엔 조금 모자란 리치브랜드에 그치지 않았을까? 혹은 the가 아닌 ‘한남 프레스티지 힐’이라든가 ‘한남 퍼스트 힐’ 같은 좀 더 복잡한 수식어들이 따라붙었다면? 지금과 같은 ‘자연스러운 품격’은 아마도 덜했을 것이다. 원래 1인자는 스스로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아주지 않던가? ‘한남 더 힐’이 바로 그런 브랜드네임이 아닐까 싶다. 




한편, ‘제일 비싼 브랜드네임이 뭐냐’는 질문에 대답을 해주면, 그 다음엔 으레 ‘그럼 제일 싼 브랜드네임은 뭐냐’는 질문이 따라붙는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지난 포스트에 나와있다. 바로 ‘제주 청정 화산암반수’ 삼다수! –삼다수는 최근 잇따른 생수 수질 부적합 문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우리 생수 브랜드이기도 하다. 


물론 생수브랜드 내에서 보자면 삼다수는 다른 브랜드에 비해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콧대 높은 ‘고가브랜드’이지만, 최고가가 90억이라는 한남 더 힐 아파트와 비교하면 삼다수 500ml는 한 병에 500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한남 더 힐에 거주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한정적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삼다수 한 병쯤은 마셔보지 않겠는가!? 



모두의 선망을 받는 브랜드네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모두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네임이 될 것인가! 



중요한 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과는 상관 없이, 우리 버벌브랜딩팀에서는 모든 브랜드네임 하나하나의 탄생에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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