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5-2. 브랜드네임, 어디까지 만들어 봤냐고요?
‘브랜드네임’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럼 너네 회사의 클라이언트들은 주로 어떤 회사들이야?”
우리에게 브랜드네임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는 천차만별이다. 자주 의뢰를 받게 되는 업역은 아무래도 신제품의 출시 빈도가 높은 식품이나 뷰티 분야이지만, 딱히 어느 분야가 강세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버벌브랜딩팀에서는 다양한 업계와 회사들로부터 브랜딩 의뢰를 받는다. 그런데, 몇 년 전에는 평소에 자주 받기 힘든 의뢰가 한 건 있었는데...
바로, ‘항공사 브랜드네임을 지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국내 항공사 자체가 몇 되지 않기 때문에, 항공사의 브랜드네임을 짓는다는 건 여러 업역을 두루 접해온 우리 버벌브랜딩팀의 입장에서도 매우 흔치 않은 프로젝트였다.
2000년대 중반에 저가항공사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항공사라고 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단 두 곳뿐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국적기’를 어필하는 것이 항공사들의 최우선 과제였던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브랜드네임에서도 드러나는데, ‘대한항공’은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대한민국 항공사’의 준말이고, 아시아나항공은 그보다 조금 더 활약범위를 넓혀서 ‘아시아 최고의 항공사’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항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위 저가항공사들이 등장하면서, ‘국적기 제일주의’였던 항공사 브랜드네임의 법칙도 깨져버리게 된다.
2004년에 출범한 한성항공은 청주국제공항을 허브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저가항공사였다. 항공사는 초기 자본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데-일단 비행기 한 대의 가격만 생각해도 만만치 않다- 기업의 지원을 든든히 받고 있던 다른 저가항공사들에 비해 한성항공은 –청주시의 지원을 일부 받기는 했지만- 자금력이 매우 빈약한 상황이었다.
2010년, 자금난으로 인해 여러 차례의 운항중단을 겪고 있던 한성항공을 토마토저축은행이 인수하였고, 이로 인해 우리 버벌브랜딩팀의 ‘항공사 이름짓기’ 프로젝트도 시작되었다.
‘한성항공’이라는 기존의 브랜드네임이 잦은 운행중단으로 인해 고객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새 브랜드네임은 기존의 한성항공과는 완전히 연계성이 없는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오래도록 튼튼히 지탱해줄 뿌리가 될 무언가는 있어야 했다.
무엇을 새로운 브랜드의 뿌리로 심을 것인가 고민하며 임원진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우리는 ‘토마토저축은행’이라는 브랜드네임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과일 중에 안과 밖이 같은 것은 토마토뿐이다. ‘토마토저축은행’이라는 이름에는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투명한 경영을 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경영진이 들려준 ‘브랜드네임 탄생비화’ 속에서 우리 버벌브랜딩팀은 마침내 새로운 브랜드의 뿌리가 되어줄 something!을 발견해냈다. 그것은 바로 토마토!
항공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특성 상 안전과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안과 밖의 색이 같은’ 정직한 토마토는 매우 적절한 상징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태양을 머금은 듯한 매력적인 붉은 색과 어느 요리에나 어울리는 친화력과 다재다능함, 몸에 좋고 칼로리도 낮은 건강과일이라는 점까지, 토마토는 새로운 항공사의 뿌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토마토’를 가장 밑바탕에 두고 치열한 버벌브랜딩 작업을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된 새 항공사의 이름은,
지금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도 친숙한 t’way!
지금은 해외여행이 대중화되었지만, 사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비행기에 탑승할 때에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비행기를 탈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에티켓에 대한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비행기를 타는 것이 특별한 이벤트였던 것이다. 저가항공사들은 해외여행을 이전보다 쉽게 만들었고, ‘비행기를 탈 때는 신발을 신어야 하는지 벗어야 하는지’ 고민이 될 정도로 고가의 고급서비스였던 항공서비스를 대중에게 친숙하게 만들었다.
t’way는 저가항공의 무기인 ‘친근함’과 ‘편안함’으로 소비자들을 inviting하는 매우 보편타당한 브랜드네임이다.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t’way의 이니셜 t에 제일 먼저 travel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주머니가 두둑하든 얄팍하든, t’way는 부담 없이 모든 여행자들을 초대한다.
여기서 잠깐, 브랜드네임을 작업했던 버벌브랜딩팀에서만 알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을 하나 이야기하자면, t’way의 이니셜 t는 ‘travel together for tomorrow’를 축약한 것으로 ‘미래를 꿈꾸는 항공사’, ‘함께하는 항공사’를 의미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투명한 정직함’을 의미하는 tomato도 있다. 친근함을 무기로 하지만, 안전이 제일 중요한 항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t’way라는 브랜드의 뿌리에는 ‘정직과 신뢰’가 든든히 자리잡고 있다.
t’way의 새출발 프로젝트에 우리회사는 버벌브랜딩뿐만 아니라 비주얼브랜딩도 맡았었는데, 버벌팀에서 도출해낸 ‘토마토’라는 뿌리는 바탕으로 비주얼팀에서는 t’way의 심볼컬러인 ‘카니발 레드’와 ‘퀸 앤 그린’을 탄생시켰다. 따뜻하면서도 활기찬 레드와 신선하면서도 정직한 느낌을 주는 그린의 조합은 여행의 설렘과 즐거움, fresh한 여행을 통한 refresh 등의 심상을 표현하며 t’way를 친근하면서도 세련되고 에너지 넘치는 브랜드로 단단히 뒷받침하고 있다.
당시 우리 비주얼팀에서는 비행기 동체에 디자인한 비주얼을 적용시키는 작업 역시도 진행했었는데, 비행기 동체가 워낙 거대한지라 모니터에서 작업한 비주얼을 실제로 적용시키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특히 도색작업은 비행기 동체를 넉넉히 커버하는 공간의 확보가 필수인 만큼 아무 데서나 할 수 없었고, 비주얼팀은 급기야 중국까지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작업장에 도착하여 보니 인근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외딴 시골마을이어서 일정 내내 아주 한적했다(=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비행기 도색하러 출장가시는 분들, 일정에 참고하세요-
한편, t’way는 캐쥬얼한 브랜드네임과 활력 넘치는 비주얼이미지를 통해 저가항공을 단지 ‘저가’로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틀을 깨고, 자유롭고 개성이 넘치며 여행을 즐기는 새로운 세대의 시각에서 항공서비스를 새롭게 정의하고자 하였다. t’way라는 브랜드네임에는 이러한 뜻을 담은 ‘(비행을) tea time처럼 가볍게!’의 ‘tea time’도 숨겨져 있다는 사실!
하나의 브랜드네임 속에는 이처럼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알토란처럼 숨어있다.
파헤쳐 볼수록 더욱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브랜드네임의 세계, 다음 회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