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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움파트너스 Nov 24. 2021

발음 때문에 이름을 바꾼 브랜드가 있다!?

Ch6-1. 브랜딩은 느낌적 느낌이 중요하다



세상엔 여러 가지 ‘3요소’가 있다. 가령 색의 3요소는 색상, 명도, 채도인데, 보통 사람들은 색이라고 하면 ‘색상’만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색상은 명도와 채도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고, 세 가지 요소 중 한 가지에 변화가 생기면 다른 요소들도 당연히 영향을 받게 된다.


브랜드네임에도 이러한 3요소가 존재하는데, 의미 / 소리 / 모양이 바로 그것들이다. ‘색’이라고 할 때 ‘색상’을 주로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브랜드네임에서는 아무래도 의미가 사람들의 인식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큰데, 의미-소리-모양의 세 가지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브랜드네임을 구성하게 되는 것은 색을 구성하는 색상-명도-채도의 관계와 마찬가지이다.


버벌브랜딩 작업은 대부분의 경우 의미를 가장 우선하여 이루어지지만 –특히 브랜드네임의 경우- 소리와 모양이 결정적으로 당락을 좌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의미가 좋아도, 소리나 모양에 결점이 있으면 –그 결점이 비록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그 이름은 브랜드네임으로 결정되기 어렵다.


모양-Shape-은 달리 말하면 Visual Image로 버벌브랜딩보다는 비주얼브랜딩의 영역에 속하기는 하지만, 버벌브랜딩 작업을 할 때에도 모양은 아주 중요하게 논의된다. 버벌브랜딩 단계에서 고려되는 모양이란 디자인 요소가 가미되기 전의 글씨의 모양, 즉 글꼴인데, 예를 들어 여러 개의 브랜드네임 후보안이 있을 때, 글꼴이 디자인으로 커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지는 않은지 –이것은 감점 요소이다- 혹은 적절한 디자인이 가미되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 –이것은 득점 요소이다- 등의 다양한 의견들에 의하여 후보안들의 당락이 결정되기도 한다. 의미나 소리는 매우 준수하나 글꼴이 이상해서 후보안에서 탈락하게 되는 경우도 당연히 왕왕 발생한다.


그렇다면 Phonetic Image, 즉 소리의 경우는 어떨까?




예전에 Sketch라는 염모제브랜드가 있었는데 –대략 20년쯤 전의 이야기다- 당시 톱모델이었던 변정수 씨가 출연한 TV광고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던 두 여성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을 담은 이 광고는 염모제로 연출할 수 있는 개성과 임팩트를 한정된 시간에 효과적으로 표현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았다.


그러나 얼마 후, TV광고로 성공적으로 이름을 알린 이 브랜드는 우리 회사에 새로운 브랜드네임을 의뢰하게 되었는데...




바로 기존 브랜드네임의 ‘발음’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케치Sketch는 밑그림 혹은 간추린 그림을 뜻하는데,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폭넓게 사용되는 표현으로 스케치 단계에서는 무엇보다 한계 없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요즘은 애쉬나 옴브레 헤어컬러가 대세지만, 당시는 형광색 등 파격적인 염색이 유행이었고, 헤어컬러는 자유와 개성을 표출하는 아주 강력한 수단이기도 했다. 내 마음대로 무한한 상상을 펼쳐낼 수 있는 가능성과 예술적 감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스케치라는 브랜드네임은 그야말로 시대적 상황과 염모제의 기능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단, 소리를 제외하면 말이다.




소리, 즉 Phonetic Image는 우리말로 음감이라고도 하는데 –음악에서 말하는 그 절대음감의 음감이다- 이는 ‘음에 대한 감수성’을 뜻하는 단어로, 버벌브랜딩에 있어서 음감이란 발음이 만들어내는 심상들이라고 이해하면 더 쉬울 것 같다.


스케치라는 브랜드네임은 의미는 너무나 좋았으나 거센소리로 이루어진 음감이 거칠어서 머리가 상할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 되었다. 게다가 ㅅㅋㅊ라는 치음-격음-치찰음의 배열은 그야말로 독한 염색약이 머리카락에 스크래치를 남길 것만 같은 느낌적 느낌이었으니...!


안타깝게도 버벌브랜딩의 세계는 이런 음성 이미지들이 매우 중요하여 스케치라는 브랜드네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애써 인지도를 확보한 브랜드네임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당시 스케치는 마침 염모제브랜드에서 토탈헤어케어브랜드로 확장을 계획하고 있어 브랜드네임을 변경할 명분이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헤어스타일링의 과학’이라는 새로운 브랜드의 컨셉에 맞추어 우리 회사에서 제안한 브랜드네임은 바로...!!!



‘mise-en-scene’



프랑스어로 ‘연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런칭 이후 지금까지 소비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미쟝센이다.


미쟝센은 연극이나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 연극무대나 영화의 씬에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 – 즉 연출을 의미한다. 하지만 미쟝센은 보다 미학적인 개념으로, 요즈음엔 무대나 영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예술적 표현들을 미쟝센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나를 연출하는 헤어스타일링의 과학’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발음도 스케치와 달리 부드러워 –미쟝센이라는 발음이 구불구불하고 윤기 나는 것을 연상시키니, 이것은 마치 파마나 염색이 매우 잘 될 것만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 미쟝센은 단번에 새로운 브랜드네임으로 낙점되었다.


밑그림만 존재하던 스케치가 미학적으로 완성된 화면이나 무대를 의미하는 미쟝센이 되었으니, ‘헤어스타일링의 과학’이라는 컨셉에 걸맞게 새 브랜드네임은 전문성을 어필하기에도 훨씬 유리했다.




하지만 미쟝센이라는 용어가 대중에게 쉽고 친숙한 표현은 아니었기에 우리 버벌팀에서는 사실 이 이름이 최종 결정될 것이라 쉽게 낙관할 수 없었는데...


후보안들을 제안하던 날, 우리는 예상치 못한 지원군을 만나게 되었다. 미팅에 참여했던 L상무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미쟝센을 적극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미쟝센이라고 하니 미장원이랑 발음도 비슷하고, 미장원에 가지 않고도 미장원에 간 것처럼 연출해줄 것 같은 느낌이네!’



지원군의 정체는 바로 미장원!!!



요즘엔 미용실이라는 단어가 표준화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머리를 하는 곳은 미장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세였다. 미쟝센이라는 프랑스어는 조금 어렵기는 했지만, 뜻을 잘 모르는 알쏭달쏭함이 오히려 미장원을 연상시켜 클라이언트로부터 더욱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는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예술의 나라이고, 특히 당시 뷰티브랜드들은 모두 ‘워너비 프렌치’를 외치던 시기였으니, 프랑스 감성 가득한 미쟝센은 토탈헤어케어브랜드로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미쟝센이라는 새 이름은 브랜드네임 3요소 중 의미와 소리는 완벽히 충족하였지만 나머지 하나, 글꼴이 조금 어려웠다. Mise-en-scene이라는 철자가 상당히 복잡한 데다, 영어가 아닌 불어여서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비주얼팀에서는 고심 끝에 미쟝센의 영문 철자를 세로로 배열하여 중복되는 철자 e를 한 줄로 붙여놓았는데, 여기엔 복잡한 스펠링을 단순화하면서 시각적으로는 전문성과 미적 감각을 더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국문 표기로는 미장센이 아닌 미쟝센을 택해 아예 낯선 철자를 통해 이국적인 느낌을 더욱 어필하였다.



복잡한 철자가 가지고 있던 핸디캡까지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미쟝센은 브랜드네임의 3요소 모두 적절히 갖추게 되었고, 예술적 감성과 전문성을 대중에 두루 어필하면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한편, 미쟝센의 성공에 맞서 ‘뷰티는 프랑스’라는 당시의 공식을 깨고 완전히 다른 전략을 들고 나온 브랜드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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