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에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였다. 코로나로 2년 여 만에 이루어진 모임이었다. 대학 시절 이십 대를 함께 보냈던 이들은 어느새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왔다. 얼마 전 이사를 한 친구의 집 거실에 모여 집주인이 직접 만들어준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고 마시며 연말의 분위기를 제대로 즐겼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꿈과 미래를 논하던 그때와 주제가 사뭇 달라졌다. 천정부지로 솟던 집값이 점점 잡히고 있어 조금 더 기회를 보다 집을 장만하겠다는 계획이나, 현재 적을 두고 있는 회사의 경영 상태, 일의 흐름에 관한 이야기로 한창 무르익었다. 우리의 고민은 이제 더 이상 이상적이지 않았다. 지독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가정을 가지지 못한 친구 한 명은 몇 시간을 먹는 일에만 집중하며 한 마디를 하지 않았다. 뭔가 말을 좀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나의 물음에 딱히 공감이 가는 주제가 아니어서 할 말이 없다는 친구를 보며, 쓸데없는 이야기로 함께 깔깔대던 오래전 우리의 시간을 떠올렸다. 같은 길 위에 서서 함께 앞 날을 나누던 젊은 시절의 우리는 자못 어긋난 상태로 그저 같은 공간에 앉아 있게 된 걸까 하는 서운한 마음마저 들었다.
모임에 빠질 수 없는 음주는 시간이 농익을수록 우리의 내면을 해방시켰다. 지긋한 나이가 되어 현재에 관해 수박 겉핥기 형식의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이 하나 둘 속내를 드러냈다. 얼마 전 아버지를 잃은 친구는 생에 처음 우울증을 앓았으며 집주인인 친구는 자신의 아들이 또래보다 인지 지능이 떨어져 센터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내 나 역시 불안장애가 깊어져 먹던 약을 증량하고 하루하루 지루한 삶을 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어느덧 검게 짙어졌다. 밝게 퍼지던 웃음은 사라지고 낮게 깔린 목소리가 진지하게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꽉 차기 시작했다. 모인 지 몇 시간 만에 진짜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동안 말없이 앉아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사는 게 외롭다."
일순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 친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배우자가 있거나 연인이 있기에 환경적 요인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은 있을지언정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문득 지난날이 떠올랐다. 지금 이런저런 일로 힘들다 어쩐다 말이 많지만 살아오며 견딜 수 없이 애달픈 괴로움은 혼자라는 사실이 아니었을까. 오랜 친구를 만나 북적이던 시간을 보내고 텅 빈 집으로 돌아갔을 때의 사무치는 쓸쓸함, 혼자 있고 싶지 않아 돌아다니던 큰 쇼핑몰 안 많은 인파 속에서의 고독감 같은 것들. 모임 시작 후 내내 뱉어내던 한탄이 '고작 그런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지 않아 다행이다. 누군가 함께여서 행복을 기대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 기대며 살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함을 가져야 한다고 농익은 시간의 언어가 내게 속삭였다. 그리고, 당신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