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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Jun 27. 2023

무제

요즘 일하는 곳에서 한가할 때 종종 동료와 수다를 떤다. 각자의 관심거리, 가족이야기, 혹은 그들이 사는 세상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 사람이 말했다. 주변에 있는,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잘 버티고 사는 지인이 매우 존경스럽다고. 수하에 아들 둘이 있는데 그들은 머리에 시한폭탄을 달고 산다고 했다. 선천적으로 뇌혈관이 얇아 지나치게 무리를 하면 사망할 위험이 있어 매사에 조심을 해야 한다. 그런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러하기에 온 힘을 다해 타인에게 선행을 베푼다고 했다. 자신의 행동이 곧 아이들에게 올 축복이라 믿으며.

 대단한 분이네요, 하고 적당히 맞장구치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옆자리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뭐지? 하며 돌아보니 늘 밝게 웃고만 있던 동료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7살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아이에게 틱 장애가 있다. 처음 그 사실을 우리에게 전할 때조차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아이가 조금 아파서 걱정이에요."라고 말하던 그녀였다. 그 모습을 보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아이가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저리 웃으며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깜짝 놀라 "왜 울어요?"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그녀가 답했다.
"그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순간 마음에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어쩐지 이 한마디에서 그녀가 아주 오랫동안 힘겹게 자신의 아이를 지켜내려 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늘 밝게 웃고 있었기에 알지 못했다. 그녀가 짊어진 죄책감과 책임감, 혹은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그 어떤 감정들. 가볍게 던지 듯 이야기했지만 전혀 가볍지 않았던 고민의 무게.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 그리고 감내해야 했던 것들.

 언제나 이렇다. 나 역시 그렇게 숨기고 사는 것들이 많으면서 타인은 보이는 게 다라고 섣불리 믿어버린다.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웃고 있겠지. 그 정도 선의 일이야. 결국 그 정도야.  정작 그들의 속이 얼마나 시커멓게 타고 있는지 제대로 보지 못하며, 내가 얼마나 썩어 들어가고 있는지 자세히 보여주지도 못하면서.

 하지만 사실 대체로 이런 것이 삶이다. 보이는 게 다라고 쉽게 판단해 버리는 어리석음.

 웃음 뒤에 감추어둔 슬픔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밟고 서서 애써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더욱 아프고 안타깝다.

당신 역시 그러하겠지.

그녀가, 내가 그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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