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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규 Jul 30. 2021

슬픔을 다루는 따뜻하고 우울한 방식들

슬픈 마음을 돕는 우울한 문학 추천


 인류의 지난 모든 슬픔은 문학의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슬픔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쉽고도 아름다운 탐닉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고, 고전과 현대를 통틀어 명작으로 칭송받는 대다수의 작품들이 죽음과 비극에 관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인물 행동의 모방 자체인 비극에 주목했으며, 이는 여전히 많은 예술 창작자의 탐독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다단한 문학사와 이론을 차치하고 지금 우리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나는 종종 나의 우울한 감정들이 슬픈 마음을 돕는다고 느낀다. 여기서 슬픈 마음은 내가 살아가는 한 나의 마음에서 끝없이 발생하는 것이며, 이들에겐 트리거가 있는 경우도, 없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우울한 감정들은 시를 읽고 싶은 마음, 슬픈 노래, 영화 등을 향유하고 싶은 마음과 그것들이다. 슬픈 마음이 우울한 작품들로 둘러싸일 때, 왠지 모를 위안을 얻는다. 한 명이라도 공감해준다면 성공이다. 평범하면서도 이상한 마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끔 시나 소설을 읽다 보면 “와닿는다”라는 표현이 극적으로 와닿을 때가 있다. 잘 썼다는 생각을 넘어, 작가가 어떤 감정으로 글을 써냈는지 그 감정과 과정에 대한 공감이다. 알아볼 수도 없는 우울함과 생뚱맞은 단어가 조합된 추상적인 문장에서 공감이 느껴질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했다. 우울도 마찬가지 일 터, 그러므로 오히려 알아듣기 힘든 문장들은 저마다의 이유로(혹은 이유 없음으로) 슬픈 마음을 가진 독자들을 넓게 감싸 안아줄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글들을 읽고 나면 죽은 지 100년은 더 된 시인이, 내가 이곳에 존재하는지도 모를 작가들이 궁금해진다. 가끔씩은 그들과 미치도록 대화해보고 싶을 정도로.



 작가는 우리와 함께 슬프기 때문에, 혹은 무관심하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함께 슬픔”과 “무관심”은 어떤 말들보다 위로와 공감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이 이루어지는 순간, 갓 짜낸 눈물의 찰나와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작가 – 작품들의 일부를 들려주고 싶다. 그러므로 이제니 시인의 <나선의 감각 – 물과 호흡을 향해>, 신철규 시인의 <소행성>, 황인찬 시인의 <무화과 숲>,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소개한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무엇과 왜와 어떻게라는 말 대신 그저 그렇게 되었다라고 하자 그저 그렇게 지금 여기에 놓여 있다라고 하자 다만 호흡하고 있다라고 하자 다만 있다라고 하자 다만 멀리서 가깝게 있다라고 하자 물결을 따라 흐르는 소용돌이를 본다라고 하자 소용돌이치며 사라지는 문장이 있다라고 하자 전해지지 않는 말을 들었다라고 하자 끝없이 이어지는 호흡이 있다라고 하자 또 다른 호흡이 또 다른 호흡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라고 하자 순간의 폭발이 있다라고 하자 다만 소리가 있다라고 하자 다만 호흡이 있다라고 하자  



이제니, <나선의 감각 – 물의 호흡을 향해> 中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

너와 나 사이에


너에게 한없이 헤엄쳐갈 수 있는 바다가

간간이 파도가 높아서 포기해버리고 싶은 바다가.


우리는 금세 등을 맞대고 있다가도 조금씩 가까워지려는 입술이 된다.


지구의 둘레만큼 긴 칼로 사람을 찌른다고 해서 죄책감이 사라질까.

죄책감은 칼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일까.



신철규, <소행성>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무화과 숲> 전문




11. 10.


 슬픔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 그러자 뒤따르는 일말의 죄의식. 때로 스스로 생각한다. 나의 지나친 슬픔은 결국 너무 예민한 나의 감수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평생 그렇지 않았던가: 항상 너무 지나치리만큼 예민하게 느끼지 않았던가?


11. 30.


 우울의 '순간'에 나는 매번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나의 슬픔을 실현하고 있다,고.

 다시 말해서: 애도의 온전한 강렬함 안에서


1978. 5. 6.


 오늘 - 내내 침울하던 중에 - 오후가 끝나갈 즈음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슬픔의 순간. 너무도 아름다운 헨델의 오페라 <세멜레> 3악장을 듣다가 눈물을 터뜨리다. 마망이 말하던 단어 ("나의 롤랑, 나의 롤랑").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中





슬픈 마음을 우울한 감정으로 감싸 안기에 좋은 작품들.

눈물의 찰나와 같은 따뜻함이 전해졌길 바라며, 작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천천히 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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