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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규 Aug 18. 2021

우리, 무해할 수 있을까?

유해하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과, "무해하자"는 무심한 선언.


 "어떤 맘을 준 건지 너는 모를 거야"라는 가사 한 소절이 노래보다 강렬히 마음에 남았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서로에게 필연적으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살지만, 실상은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의도를 했던 하지 않았던 스스로 직접 실감하지 못할 상처들을 남에게 남긴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감정을 나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무해"는 존재할 수 없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는 더욱 확실해지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내게 무해할 수 없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마저도 무해할 수 없다. 그것이 에로스적인 사랑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나오는 애절하고 저릿한 감정까지 포괄하는 의미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무해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아예 모르는 사이거나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야 한다는 꼬인 듯한 생각에까지 도달하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무해한 관계는 과연 얼마큼의 가치가 있을까. "너는 내게 무해한 사람이다"라는 말은 어쩌면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그만큼 단조로운 감정들일 테니.


 우리는 모두 인간관계 속에서 아프다. 누군가로 인해 아픈 날은 살이 까졌던 날보다 더욱 깊은 상처로 남는다. 겉으로 까진 상처는 다시 아물지만, 사람으로 아팠던 기억은 다시 꺼내 보아도 마음 한 켠의 저릿함을 떨쳐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린 모두 사람과 함께 살아가며, 관계 맺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매번 같은 기대와 실망의 서클 안에서 관계 맺기 위해 노력한다. 상대방이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관계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일말의 "무해한 사람"이 되려는 남모를 배려를 가진 채로.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생기는 순간, 유해라는 욕심이 자라난다.


 감정을 나누는 관계 속에서 무해한 사람은 없다. "당신이 나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은 사실 그 사람의 감춰진 희생을 보지 못한 것이고, 내게 무해한 사람이 되려고 했던 상대방의 희생을 알게 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 사실에 상처 입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무해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상대방에게 주는 마음의 무게를 나는 알 수 없고, 그들도 나에게 어떤 마음을 줬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


 이제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무해하자"는 말이 "우리의 사이에 아무 감정도 들여놓지 말자"는 일종의 무심한 선언처럼 들리기 때문이고, 서로의 사이를 가득 채웠던 유해가 무해로 변하는 순간은 그 어떤 해보다도 아픔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어떤 마음도 없이 무해한 관계로 살아가기 보다는, 무해한 척 미소를 지었지만 사실은 뜨거운 해를 닮아있던 그 모습처럼 살고 싶다. 그리고 헤어짐의 순간에서만 짧은 무해를 외치리.







최은영 작가의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고, 제목을 골똘히 들여다보다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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