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박연준 산문집
그날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를 읽고, 두 시간 정도 글을 썼다. 이어 브런치, 서평 작업 좀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잠시, 그래 처음엔 늘 그렇다. 처음엔 잠시였다가 이내 생각이 없어지고, 폰과 나의 세상이 펼쳐진다. 별 내용도 없다. 볼 게 없다. 볼 게 없는데도 본다는 것은 마치 사랑하는 사이 같아진다.
그러다 J를 만나야 돼서 약속 장소로 이동해야 해서 그제야 폰을 가방에 넣었다. 생각보다 일찍 온 건지, 그가 늦게 오는 건지. 그 사이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를 읽는다. 그런데 땩 거기에
{좀비처럼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내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집에 사는 게 아니라, 집이 사람 위에 올라타 있는 광경을 본 것 같았다.
나는 J를 기다리고, 책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삶의 축약이자, 시간의 외투가 될 수 있는 말이다. 시간은 웬만하면 외투를 벗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외투를 벗으면 많은 것들이 함부로 쏟아져 나올 수 있으므로. 마음도 휑하니 뚫린 것 같았다. 내 모든 가련한 시절이 눈밭에 풀어지는 것 같았다. 슬프고 망측하다.
무엇이든 적당한 거리에서 숨 쉬듯 받아들이는 자세, ‘되는 대로 즐겁게’ 해보려는 자세가 좋다. 숨 쉬듯 자연스럽다는 것. 그들이 자기로 충만해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대체로 타자의 생각과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가. 체면과 치레라는 말은 관계 속에서 늘 우리를 억압해 왔다. 무리하지 않고, 나답게, 편안한 자세로 사는 일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원할 줄 몰랐고, 슬픔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용할 줄 몰랐다. 한밤중 창밖에서 어슬렁거리며 뚱뚱해지는 어둠이 자신의 미래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괴롭겠지요. 진심과 진실로 어우러진 원석 한 덩이가 당신이 가진 재료의 전부. 전부이자 아무것도 아닌 것, 잠깐 한눈을 팔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 무게도, 색깔도, 높이도, 깊이도 없는 것.
나뭇잎은 멍들었고, 가장자리부터 올이 풀리던 하늘은 급기야 사라졌다.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들, 떠나고 싶지만 발이 묶인 것들, 동적이면서 동시에 부동인 것들, 하염없으면서 속절없는 것들은 슬픔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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