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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 작가 Aug 22. 2023

여자 둘이 집을 고칩니다(폐가 셀프리모델링)

셀프리모델링은 마음에만 간직하고 싶었어요.

 

#내외부페인트, 오일스테인,  에폭시, +담벼락      


 고치는데 쓸 수 있는 최대치라 생각한 돈은 실제로는 최저에도 못 미쳤다. 너무 많은 돈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손댈 수 있을 것 같은 내외부 벽 페인트, 바닥 에폭시, 옥상 방수, 나무문 오일스테인은 여자 둘이 감당하기로 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오랜 시간 벗겨져 있던 집에 그러면 안 됐다(그땐 맞고, 지금은 틀린).     

 


마음에서 끝내고 싶었던 셀프리모델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내부 벽에 페인트 바르기부터 하기로 했다. 뭐든 기초 작업이 중요하고 힘이 든다. 드라마에서처럼 롤러로 페인트를 쓱싹 바르며 까르르르 대는 건 불가능하다. 페인트를 바르기 전에 체험 삶의 현장(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하하)을 찍어야 한다.  

   

페인트 가게에 가서 앞으로의 상황을 이야기하니, 일단 해볼 만큼만 사서 해보란다. 더 달라고 해도 딱 페인트 할 만큼만 주셨다. 헤라, 테이핑, 핸디코트(내부, 외부), 바인더, 붓, 롤러, 롤러 대, 빈 통, 외부용 수성 페인트. 이렇게 사면 내외부 모두 사용 가능하단다.      


유튜브에서 페인트 바르는 영상을 여러 차례 본다. 최대한 허름한 옷을 입고 해월가로 간다. 오전에 핸디코트 작업, 오후에 페인트 작업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일명 빠데라 불리는 핸디코트를 바르는 작업은 나를 미지의 세계로 끌고 갔다.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벽의 갈라진 틈이나 석고보드의 구멍들을 모두 메꿔야 한다. 핸디코트는 건물 내벽 마감재에 뚫린 구멍을 매끄럽게 하는 용도로 쓰이는 하얀 점토 같은 것이다. 핸디코트 작업을 하루 종일 하고 진이 빠졌다. 한동안 펀치를 맞은 권투선수처럼 넉다운되었고, 놀란 손은 진정하지 못해 파스 신세를 졌다.      



그래서 시켜달라는 Y(지인)의 말에 덜컥 그래 버렸다. 업체에 맡겼어야 한다. 내부 페인트를 바르는데 바닥 에폭시를 해야 할 부분에 점점이 떨어뜨리고, 나무 문틀도 흰색 페인트를 칠해놓았다. 핸디코트를 하지 않은 부엌 천장엔 그냥 페인트를 발라 놓아서 환공포증에 걸릴 것 같았다. 조명이 예쁠수록 안타까움도 컸다. 업체에 맡길 돈을 Y에게 준 것은 모르는 사람에게 주느니, 아는 사람에게 주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상식 밖의 일이 연이어 일어나자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너무 흘렀다. 주차장에서 바로 보이는 창고 건물 외벽 페인트를 칠해보기로 했다. 쇠헤라로 거친 면을 정리하는 일이 필요했다. 낡고 들뜬 곳을 벗겨냈다. 건물 외부용 핸디코트로 크랙을 메꾸었다. 창문틀을 마스킹 테이프로 감쌌다. 그리고 조색한 색이 어떻게 나올지 발라보았다. 1회 바르고 2회 발라도 거무튀튀한 것이 사라지지 않았다. 전쟁을 하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해 버렸지만 롤러를 부단히 놀렸다. ‘하... 이를 어쩐다.’ 그래도 칠해보길 잘했다. 그래야 색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흰색으로 칠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롤러는 다시 사용할 생각이라면 비닐에 싸두면 사용할 수 있어요)     



사태는 사태로 남고, 여자 둘은 다시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문살 오일스테인 바르기다. 걸려 있는 문에 쓱쓱 오일스테인만 바르면 얼마나 좋겠냐만,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뭐든 기초 작업이 오래 걸린다.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새벽 6시 출발해서 오전에만 살짝 하려고 했다. 너무 힘을 주면 도망가고 싶어질까 봐. 그런데 일찍 가면 일찍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을 더 오래 하게 된다.

우선 전통문을 모두 떼어낸다. 그리고 마당에 들고 나온다. 문을 떼어내고 마당에 늘어놓고 나니 모두 10개. 전통 문살에 붙어 있는 종이를 모두 떼어낸다. 잘 안 떨어진다. 분무기를 찾을 수 없어 손으로 물을 묻혀가며 샌딩 했다. 샌딩 시 마스크를 착용하면 좋은데 자외선 차단 천을 두른 게 문제였다. 답답해서 코를 내놓았는데 염증이 생기고 잠잘 때 숨이 안 쉬어졌다.


오일스테인을 칠할 때 어떤 영상에서는 붓보다는 헝겊이 낫다고 했는데, 난 붓이 나았다. 색은 마호가니로 했다. 블랙 계열로 하고 싶었는데 H가 미리 사다 놓고 돈을 달라고 하는 통에 그냥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샌딩의 기적이 이런 것인가. 칠하고 나니 작업 성과가 너무 좋아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셀프리모델링 중에 제일 좋은 성과가 아니었나 싶다. 1회 칠을 다하고 나니 어느새 오후 4시다. 처음으로 논산집에서 씻었다. 찬물로 씻었는데도 괜찮았다. 그만큼 기분이 나아져 있었다. 다음날도 새벽 6시에 출발했다. 좁은 집에 무슨 문살이 가득한 전통문이 10개나 되는가. 그래도 열심히 2회 차 오일스테인을 발랐다.   




   

다음은 바닥 에폭시 작업이다. 카페에 가면 약간 미끈한 시멘트 바닥같이 되어 있는 모습을 자주 보는데, 그게 바로 에폭시를 발라놓은 것이다. 퇴근을 하고 유니폭시를 포함한 도구들을 달이 차에 싣고 해월가에 도착했다. 비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바닥이 잘 쓸리질 않는다. 마른걸레로 연신 훔쳐냈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엄청 깨끗하게 하지는 못했다. 청소기를 가져왔어야 됐다고 많은 후회를 했다. 다음으로 미룰 수 없는지라 멈추어야 하는 때를 알아야 했다. 이 정도의 깨끗함에서 멈추자.      


크랙 간 곳은 바닥보수용 퍼티로 메꾸고 말리면 되는데, 바닥을 새로 만든 곳에 작업을 하는지라 패스하기로 했다. 그런데 벌써 금이 간 곳이 많다. 에폭시는 유니폭시를 사서 사용했다. 주제와 경화제가 있는데, 1:1 비율로 섞는다. 그리고 막대기로 5분 이상 저어줬다(교반기는 패스했다). 주제통 윗부분을 헤라로 뜯은 뒤에 경화제를 부으면 통에 딱 맞게 된다고 했는데, 안 뜯어져서 빈 통에 담아서 사용했다. 낑낑대고 들고 가서 창고방부터 시작했다. 기존에 필요한 것보다 배로 많이 샀기에 듬뿍듬뿍 발랐다. 가장자리는 붓으로 칠하고 나머지 바닥은 롤러로 문질문질했다. 다 하고 나니 밤 11시다. 출입금지 종이를 붙이고 환기가 되게 문을 열고 방충망만 해 놓았다(스위치는 미리미리 꺼놔야 합니다. 바른 곳에 발자국을 낼 수 없으니까요)    

 

다음날 논산에 도착해 에폭시 하도 2차 작업을 했다. 다행히 잘 말라 있었고, 불행히 바를 때 바닥에 새까맣게 먹는 듯이 보였던 곳은 언제 에폭시를 발랐냐는 듯이 없어져 있었다. 2차 바를 때 안 바른 곳과 바른 곳이 티가 안 난다고 하는데 에폭시가 먹지를 않아 티가 아주 잘 났다. 전실과 작은방을 빼고는 모두 처음 하는 기분이었다. 2차 작업 후에는 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견딜 수 없는 냄새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안고 일어섰다.      


다시 금요일이다. 한 주 동안 몸이 고됐다. 회사에서 중요한 첫 회의에 참석해야 했고, 일도 많았다. 이제 상도 즉, 코팅 작업 2회가 남았다. 상도 방법도 같다. 주제와 경화제를 넣고, 충분히 섞어준다. 가장자리는 붓으로 칠하고 나머지 바닥은 롤러로 펴 바른다. 방독마스크를 해도 냄새에 질식할 것 같다. 물을 마시면 몸 안에서 냄새가 타고 올라오는 것 같다. 일을 마치고 그곳으로부터 도망이라도 치듯이 벗어났다.     


 


마지막으로 담벼락이다. 고압세척기로 찌든 때를 모두 벗겨냈다. 날이 좋아 쨍하니 말랐고, 누런 집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흰색으로 칠하기로 했다. 페인트를 칠하기 전에 수성바인더를 발랐다. 담벼락에 뿌리박은 풀들이 정겹지 않다. 다 바르고 근처 쌈밥집에서 우렁을   집어넣고 나오는데 비가 온다. (담벼락, 마당, 문지방, 천장 오일스테인 작업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자).


 이제 작은 방에 협탁, 카펫, 스탠드 조명을 놓고. 주방엔 싱크대와 식탁을 놓으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날 수 있으려나. 폐허 속에 피어난 잡초처럼 내 마음도 어딘가에서라도 뚫고 나와 기지개를 켜려나. 제발.....     


Ps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해월가 안방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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