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집을 고치기 위해 필요치 않은 것을 덜어낼 시, 범죄의 온상이 되는 것을 염려했다. 그런데 이곳은 헤치는 이 없는, 아무도 대문을 잠그지 않는 도심 속 주택가이다. 다만, 허락 없이 쓱 들어와서 집을 둘러보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좀 당황하긴 했다. 으슥하면서도 안전하면서도 또 경계가 없기도 한 여기는 해월가이다.
전실에 앉아 창문 밖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는 날을 꿈꿨다. 눈과 비가 나의 낭만을 만끽하게 해주는 부수가 될 줄 알았지, 집을 파괴하는 요소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가라앉고 있다. 비 냄새가 흘러들어오다 이내 우두둑 비가 떨어진다. 거센 빗방울이 뺨을 치는 것 같다.
집을 이제야 다 고쳐간다고 생각하던 차에 많은 비가 내렸다. 뒷마당 처마가 짧았던지 벽을 타고, 창문을 타고 집안으로 물이 들어왔고, 부엌 쪽으로는 범람했다. 앞마당은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며 집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장이 젖더니 이내 물방울이 떨어진다. 천장은 내려앉았다.
비는 창 너머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덕분에 집이 아파하는 만큼 더 소중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 본디 내일인 양 하는 것들이 별로 없는데, 왠지 내일 같이 아픈 시기였다. 태풍이 왔다. 태풍은 살아있는 것 마냥 잠시 동안 에너지를 내뿜다가 사라진다. 마치 살아있을 때는 성난 황소 마냥, 무언가 불같이 화가 난 뿔난 백성 마냥 거침없이 쏟아 내다가 사라진다.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진한 흔적이 남는다. 한동안 떨쳐버리지 못했다. 내 안으로 끌어들여 아파하고 침체했다. 빗소리가 거세다. 내리는 비를 바로 보지 못했다.
로망대로, 무턱대고 기와지붕을 선호하면 안 된다. 오래된 기와를 살리는 것, 옛것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 그 안에서 미를 찾는 것도 중하지만 기본적으로 비가 새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덕분에 오래된 창문을 모두 교체했어요). 처음에는 창고방에서 누수가 발견됐다. 창고방은 천장을 노출시키지 않고 석고보드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석고보드 밑으로 물이 떨어져서 걷어낼 수밖에 없었다. 집은 마음으로만 울면 애달프기는 하겠으나 거기서 멈추겠지만, 몸으로 표현하니, 연신 끙끙대는 것 같아 덩달아 신경이 곤두선다.
비가 안 오는 날이 있으면 좋으련만 많이도 왔다. 어찌나 거세던지 우산을 쓰고 걸어도 이내 옷이 다 젖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천장이 내려앉았다. 습기가 찬 거라고 우기던 H(레모델링 업체)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양동이를 받쳤다. 욕실 벽면에서도 물이 흘렀다. 앞으로 50년은 더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준다던 H는 집안으로 들어오는 비에 속수무책이었다. 확연하게 울고 있다.
경사도를 맞추지 않고 지붕을 추가 설치해서 비가 오히려 기존 지붕의 경계로 들이치는 일이 발생해 천장이 무너지게 하는데 공조했다. 지붕 작업 시 목재를 이어 달고, 지붕이 주저앉은 걸 세워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비가 들어차고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한 나머지 지친 기색이 완연한 상태로 아직이다.
욕실 옆 처마를 하지 않아서, 빗물받이가 없어서 비가 오면 속수무책으로 집들이 고생을 해야 했다. H에게 이야기했지만, 실행되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집안으로 물이 들어차도 속수무책이라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견적을 봐야 하는 일이 이어졌다. 그중 어닝아저씨라고 부르는 분은 집 전체를 둘러보고는 근원적인 문제를 장시간 이야기했다.
앞마당은 한편에 배수로 흔적만 있었다. 무늬만 배수구라는 말이 이런 데에 쓰이는 걸까? 어닝아저씨와 살피다가 빗물이 빠져나가는 수로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마당 앞의 우수관을 이용하자는 이야기로 흘렀다. 그런데 희한한 건 빗물통을 매립하고 나서 마당에 비가 더 많이 고인다는 웃픈 일이다. 그리고 마당을 다 파헤쳐 놓아서 마당 공사를 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그래도 우수관을 안에 넣고 우수관로로 연결해서 마당 밖까지 연결하는 공사는 마쳤다. 그 뒤 지대를 어느 정도 맞추기 위해 모래를 깔고 기존에 있던 바닥재(돌)를 그 위에 올렸다. 일부는 모래 바닥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도 이 집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뒷마당은 비가 빠져나가는 곳이 없어서 주방으로 범람했는데, 그렇다고 뒷마당 담에 구멍을 내면 뒷집 지대가 높아서 오히려 더 비가 쏠릴 수가 있단다. 그래서 뒷마당은 처마와 담벼락까지 연결하여 덮는 걸로 했다. 당장 비가 세차게 붓기 전에 해결해야 해서, Y의 도움을 받았다. 미관을 해치는 모양새지만 그 뒤로 비가 들어차지는 않았다.
그리고 논산 시청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 재난에 대한 피해를 보상해 줄 수는 없으나 피해사실확인서를 발급해 줄 수는 있다고 했다. 피해사실확인서는 어떻게 발급되는지 궁금하여 물어보니, 실사확인을 한 후 해당 행정복지센터에 오면 발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집 상태를 확인하고 천장 전체 상태가 안 좋으니 그걸로 발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집에 물이 들어왔다가 빠진 거로는 피해상황확인서 발급이 어렵다고 했다.
마침내 비가 멎어가고 있다. 우산을 쓰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늘었다. 그리고 우산보다 홈키퍼가 더 절실하다. 모기가 맹렬하게 달려든다는 게 어떤 건지 몸소 실천한다. 해월가에 가자마자 하는 일이 홈키퍼를 분사하는 일이다. 한동안 삶에서 잊고 있었던 홈키퍼를 사용하고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셀프리모델링을 하며 눈에 이물감이 있어 안과에 가니 돌이 박혀 있다며 제거했다. 이런저런 고생을 했다면 응당 집이 아름다워야 하거늘 서점의 분칠은 또 다른 해월서가를 만들었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닐 때 그것이 틀린 게 아니기에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내버려 두기를 반복한다. 누군가는 사막 같다 하고, 누군가는 여기엔 벽화를 그리는 수밖에 없다 하고, 선인장과 낙타를 그려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그러자 낙타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오는 해월서가가 떠올랐다. 하얗고 단정했던 서점의 풍경에 갑자기 카우보이가 말을 타는 것 같은 경쾌함과 사막의 오사이스같은 풍경이 겹쳐졌다. 내가 바란 것이 아닌데도 흥겨움이 묻어났다. 단정함을 원하는 나로서는 그것은 어찌 보면 한낮의 해프닝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순간이나마 즐거웠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서점이라니, 생각만 해도 사이다를 쭉~ 탄산수를 쪽~ 들이켜고 싶지 않은가. 누군가의 잘못이 누군가의 눈으로 보면 다른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배운다.
비가 그치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쨍하다.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에 있으니 이곳이 사막이 아니고 어디인가 싶다가 지붕 너머로 고개를 돌리면 높디높은 초록 풀들이 보이고 이내 바람이 스쳐오는 환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면 또 이곳이 바람의 정원이 아니고 어디인가 싶어 진다.
걱정보단 당장에 해월가에게 해 줄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런 고생이 지금의 내 기분 상태를 절망으로 몰아가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해야 하는 것들을 뒷전으로 미루고 우선은 쉬고 싶다. 쉬고 싶어 이 집을 샀는데, 어찌해도 해도 끝이 없는 길에 들어선 기분이다. 서둘러 빗자루를 내려놓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