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소리가 태동처럼 울려 퍼지는 후미진 동네. 마음먹고 찾지 않으면 지나치기도 어려운 곳에 집과 책방이 있다. 해월가에 앉아 있으면 창문 너머 책방이 인사를 한다. N의 말대로 집 문을 열면 바로 책방이 있는 곳.
비가 오고 집은 무너지고를 반복했다. 집은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마치 너무 가난해서 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하지 못한 벌거숭이 같았다. 그럼에도 기존의 것을 고쳐 쓰는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집과 사람이 하는 모양새가 닮았다. 집은 방향을 잃지 않고 살아있다. 집 그대로 살아가는 걸 지켜보는 게 내 일이 되었다.
봄에 집을 구매해서 고치는 동안 여름이 왔다. 그리고 장마를 만나고, 어느새 겨울이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집 어디가 새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어느새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지붕이 견디기나 할는지 걱정하는 계절에 들어섰다. 집은 다시 예전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생기는 찾지 못하리라. 그래도 주저앉았던 집이 재활의 시간을 거쳐 다시 걷고 있다. 오래 산 고양이를 곁에 둔 집사의 마음으로 쓰다듬는다. 숨은 쉬고 있는지. 가르랑거리는 소리에도 심장이 벌렁벌렁하다.
일부를 책방으로, 일부를 공방처럼 모임 장소로 쓰고 있다. 대관하는 집은 50년 전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고 있다. 유명하고 멋진 고택이 아닌, 연탄공장에서 일하던 누군가의 첫 집을 대부분 그대로 살렸다. 외부 창고의 나무문도 수선하여 사용하고 있다. 책방에 들어가는 문도 그대로다. 깨진 유리만 끼워 넣었다. 오래된 집이라 구조보강이나 수도, 전기, 오수 등의 피할 수 없는 것들은 돈이 많이 들더라도 건강하게 고쳤다. 해월가는 천고가 낮고, 뚫린 곳이 없는데 답답하지 않고 아늑한 곳이다. 언젠가부터 찾아온 공황증세도 여기에서만은 비껴간다.
해월가 옆으로 붙어 있는 3.8평 건물은 책방(책, 음료, 과자, 만들기 키트, 어린이 책방지기 작품, 꽃할머니의 세상에 하나뿐인 수세미와 같은 마음이 있어요)으로 운영하려고 세팅했다. 기분 내키는 날 열어두고 있다. 책방에 왔는데 주인이 없다고 놀랄 필요가 없다. 책방을 애정하면서 있다가 가면 된다. 책방 이용방법은 들어가면 잘 보이는 곳에 적어두었다. 한번 쓱 읽고, 따뜻한 송풍기를 켜고 딱 하나 있는 테이블을 차지하면 좋고, 안되면 의자에 앉아서 읽고 싶은 책 읽다가 가면 좋겠다(나갈 땐 꼭 송풍기를 꺼주세요ㅎㅎ). 서점에 가면 작은 곳이든 큰 곳이든 책이 빼곡하게 있어, 오히려 책을 고르기 난감하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일단 서점이 보유한 책의 1/10 정도만 진열해 두었다.
책방을 운영하는 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존재한다. 책방을 여행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책방을 차린 것은 내 곁에 책방이란 여행지를 항상 품어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해월서가는 집의 겨드랑이 온기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할머니의 품에 안긴 역시나 나이 든 어머니같이, 뜻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내가 있을 곳에서 책방주인으로 살고 있다. 슬렁슬렁 책임감을 가지되 한껏 자유를 누리는 생활은 덤이다.
동네 할머니들이 담벼락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방 주인인 나에게로까지 흐른다.
“아니 아파트 사지 뭐 하러 다 쓰러져가는 집을 샀어?”
“이런 것도 누가 산다고 하고 팔리네.”
“아니 아예 새로 짓고 있구먼.”
“생글생글 웃는 게 이쁘네.” 등등.
아무 날, 아무 때의 소소함을 이곳에서 채운다. 손짓하는 이곳에서 조용히 불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