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산 이야기
아침에 햇살은 좋았다.기온은 밤새 곤두박질쳐서 수은주가 빙점이하로 떨어졌다. 나는 거실 통창밖을 초점 없이 바라보았다. '하필 오늘 날씨가 이래서야 ᆢ.' '산행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ᆢ. ' 결정이 망설여지는 갑작스러운 첫추위가 찾아왔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켰지만 시선은 핸드폰 날씨 아이콘에 멈췄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은 부산한 하루계획의 저울질이 시작됐다.
'평일휴무 하루를 따뜻한 도서관에 처박혀 독서삼매에 빠져볼까.'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태안 둘레길을 달려볼까.' '아쉬운 대로 꿩대신 닭으로 가까운 팔봉산 산행이라도 다녀올까.'
그렇게 오전 이른 시간은 지나가는 듯했다.
문득 모종의 각오가 되살아났다.
충청 서해안에 살면서, 이 지역의 가장 높은 산, 뱃사람들의 등대산, 가을 억새밭으로 유명하고 명산이라고 칭하는 그 산을 등산해 보겠다는 오래 전의 계획이 있었다.
벌써 가을 햇볕이 토끼꼬리만큼 줄어든 지 오래다. 다음 주로 또 미룬다면 높은 산들은 이미 하얀 겨울이 점령할 것 만 같았다.
차 열쇠를 등산복 주머니에 던져 넣고 작은 배낭에 물병과 과일 몇 개, 견과류 한 줌을 비닐팩에 담아 챙겼다.
차를 몰고 한 십분 쯤 갔을까 내비게이션을 켠 핸드폰이 귀찮게 울린다. 오전에 일 보러 나간 아내의 전화였다. "지금 어디죠 아 ᆢ 한 십 분전 쯤 집에서 나왔는데 ᆢ" 나는 이때도 아내에게 산행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조금 전 대문 앞에 신선식품 택배가 왔대요. "나는 그녀의 전화 취지를 알아차렸다. '알았어 지금 집에 들어가서 냉장고에 넣어 놓을게ᆢ.' 산행 출발시간은 그렇게 또 여지없이 밀려나고 말았다.
이른 아침 아내는 내가 오늘 쉬는 날이고 산행을 간다고 했던 말은 까맣게 잊은 듯 자신의 외출 준비에만 분주했다. 나도 덩달아 그 일은 잊은 듯이 밖의 추운 날씨 핑계로 집에서 쉴까 망설이며 산행얘기를 꺼내지 않았었다.
다시 내비게이션를 켜고 오서산을 향해 출발했다. 그 거리가 60킬로를 훨씬 넘겨 찍혔다. 만만찮은 행선지다. 태안을 출발해 남향으로 햇빛을 받으며 한동안 달렸다. 차 안에서 보는 초겨울의 경치가 찬란한 햇살 때문에 평화로워 보였다.
안면도를 못 미쳐 크게 좌회전해 부남 간월호 제방길에 접어들었다. 하늘의 구름은 제법 많았지만 푸른 하늘이 보이고 바다 물결은 잔잔한 편이었다.
왼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서산간척지의 너른 들판은 가을걷이가 다 끝나 스산하기까지 했다.
쭉 뻗은 방조제 제방길이 길게만 느껴졌다. 뚝길을 달리면서 나는 수십 년 전 이곳을 건설하던 수많은 사람들과 오가던 장비들을 떠올렸다.
제방길을 완전히 벗어나 얼마쯤 지났을까 오른쪽으로 멀리 흐릿하게 남쪽으로 내달리는 차령의 준령산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남동방향, 잿빛의 웅장한 능선 실루엣 그 뾰족한 부분이 아마도 오서산이 분명했다. 백여리밖 이곳에서도 그 산의 자태와 위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몇십 분을 더 달린 것 같다. 왼쪽에는 민가가 자리하고 오른쪽은 숲으로 이어지는 이차로 길이었다. 그 길로 접어들어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갑자기 왼편 민가 쪽에서 숲으로 누런 물체가 번쩍 지나감을 느꼈다. '앗ㆍ 이게 뭐야. ' 나의 반사신경이 표출된 후ᆢ순간 차량앞쪽 오른편에서 약간의 둔탁한 충돌음이 들렸다.
오른쪽 바퀴들에서 연달아 요철의 느낌까지 왔다.
로드킬이었다. 그 대상은 누런색 길양이인 듯했다. 차를 멈추려다 가속된 속도와 다가서는 차량이 있어 그대로 지나쳤다. 상대가 길양이 일지언정 생명을 앗아간 사고였다. 산에 도착할 때까지 기분은 내내 개운치 않았다.
집에서 출발한 후 한 시간이 훌쩍 넘어 오서산의 보령 쪽 성연주차장에 도착했다. 정오 무렵이었다. 주변은 한산했고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들었다. 차량은 흩어져 대 여섯 대 주차 돼 있었다.
입산안내소 근처와 입구마을에 가끔씩 서있는 은행나무가 시선을 끌었다. 늦은 노란단풍만이 가을을 붙잡고 있는 듯이 존재감을 나타냈다. 먼저 에너지 충전이 필요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닌가. 편의점에 들어가 김밥을 두줄 샀다. 차 안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등산길에 올랐다.
한눈에 들어오는 등산객은 거의 없었다.
초겨울의 쌀쌀한 날씨 탓일 게다.
주차장 한편에서만 산악회 회원들로 보이는 십여 명이 웅성댈 뿐이었다. 그 후에는 팔부능선 등반까지도 등산객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어느 순간에는 고독함과 산속의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다행히 겨울산은 대부분 초목이 옷을 벗는 나목시기라서 숲 속이 훤했다.
소나무, 상수리, 떡갈나무가 보이고 간간이 익숙한 산벚나무의 수피가 눈에 띄었다.
등산로 초입부터는 임도가 잘 갖춰져 걷기가 수월했다. 차령산맥 즉 금북정맥의 일부여서 그런지 큰 산괴의 특징으로 임도가 잘 설치되어 있었다.
백두대간의 지선인 금북정맥이다.
나의 고교시절 지리담당 은사님은 민족지리 용어를 누차 강조하셨다.
"태백이니 소백이니 차령산맥이니 이런 것들 모두 일제식민의 잔재들이다. 어떻게 강이 산맥을 끊을 수가 있느냐. 우리의 대간, 정맥은 강에 의해 끊이지도 않았고 백두산부터 면면이 이어진단다. 너희들은 그것들보다 백두대간 금남정맥 금북정맥 이런 것에 더 익숙해져야 한다. "
오서산이 금북정맥의 최고봉인 점을 감안하다면 산괴의 규모가 만만치 않음을 이해할 수 있다.
임도의 규모도 크고 대부분 포장되어 있거나 쇄설도로로 관리되고 있었다. 폭우를 대비한 육중한 사방댐도 보이고 등산로 곳곳에 위치와 고도를 표시하는 흰색기둥이 수십 개나 박힌 듯했다.
오부능선쯤부터는 통나무 계단이 한동안 이어지고 그 이상의 등산로는 자연산길이었다.
나는 등산로 해발 사백미터 지점부터인가 45도 이상 급경사의 산길이 계속 돼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500미터 지점은 올랐겠지 하고 흰색 표지기둥 해발높이를 살펴보니 아직도 멀었다. 십여 미터 오르는 것도 힘들게만 느껴졌다.
한 거름 한 거름 가뿐 숨으로 오르기를 계속해 팔부능선길에 접어들었다. 가깝게 보였던 뾰족한 정상은 어느새 신기루처럼 저만큼 뒤로 물러나 있었다. 대신에 은빛 억새꽃 군락이 힘겨운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한 등산객이 보였다. 저쪽 위에서 하산 중인 것 같았다.. 오늘 등산 중 처음 만난 사람이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수고 많으십니다. '
상대방도 반갑게 응답해 준다.
"네 수고하세요. 정상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드물게 만나니 더 반갑고 서로의 인사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출발했던 성연리주차장이 발밑에 지척으로 내려다 보인다. 서쪽으로 시선을 옮겨 보니 저 멀리 드넓게 펼쳐진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경치가 참으로 장관이었다.
다행히 정상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몇 개의 등산로가 합쳐지는 정상은 역시 달랐다.
정상석 배경으로 셀카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촬영했다.
이제 한쪽에 설치된 등산로 안내판을 살펴봤다. 아뿔싸 내가 올라온 노선이 가장 긴 등산로였다. 어쩐지 평일이라지만 올라올 때 사람이 그렇게 없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초겨울의 짧은 해가 급하게 기우는 느낌이 들었다. 오서산의 매럭적인 정상의 능선을 뒤로하고
다시 왔던 길로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은 훨씬 쉽다는 통념과
짧은 오후해가 미덥지 않아 다른 길로의 하산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걷는 속도가 빨라지니 발밑에서 잔돌멩이와 모래들의 마찰력이 떨어짐을 느꼈다.
하지만 해지기 전 집에 도착하겠다는 은연중의 결심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빠른 경보 속도로 산을 내러 갔다. 해발 고도를 확인하며 순조롭게
하산하는 듯했다.
칠부 능선을 내려갈 즈음 우려의 사달이 났다. 왼발 등산화가 갑자기 마찰력을 잃었다. 미끄러져 크게 뒤로 넘어진 것이다. 반사적으로 왼손을 뒤편 땅을 짚었다. 무술 낙법이라도 익혀 뒀으면 하는 후회의 순간이었다.
순간 손목에 통증이 일어 나의 중추 신경계를 긴장시켰다.
손목 골절 같았다.
'이런 젠장!'
'아침에 도로에서 길양이 피를 보더니만ᆢ.'
그것과 인과관계는 전혀 없는데도
나는 왜 그 일을 떠올렸을까.
서둘러 내려온 내 행위를 탓해야지. 머릿속에서는 내 감성과 이성의 충돌이 격렬히 일고 있었다.
손목을 휴대하던 손수건으로 질끈 묶고 통증을 참아냈다.
다시 조심스레 하산을 시작하니 통증이 심해지고 하산 속도도 현저히 떨어졌다.
내려오는 도중에도 인적은 역시 없었다. 등산로 입구에 어렵게 도착해 하산을 완료했지만 손목통증은 멈추지 않았다.
등산안내소 문을 밀고 들어갔다.
구급약이라도 도움을 받을 요량이었다.
다행히 중년의 여성직원은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주고 압박붕대를 칭칭 감아 주면서
참을만한 지를 물었다.
"하산길에 그러신 거죠"
"환자중 십중팔구 하산길에 사고를 많이 당했지요."
그리고 신속한 병원행을 권고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왼 손목의 부상이라서 차 운전은 가능했다.
이렇게 초겨울에 강행한 오서산 첫번째 산행은 내 기억 속에 또렸이 각인될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