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쌉쓰름한 자영업 분투기 29
우리 막내가 1월 7일생이다.
나는 만삭의 나날들을 내 앤틱 창고에서 꼼짝도 안 하고 오로지 장사를 하면서 보냈다.
신현리 바인스 앤틱 창고는 4층짜리 빌라 뒤에 바짝 숨듯이 가려있는 창고라서 오후가 되도록 해가 들지 않았다. 해가 들지 않는 시멘트 블록 창고는 그 자체로 거대한 냉동고였다.
하루 종일 파카와 목도리로 칭칭 감고 일을 하다 보면 저녁 무렵에는 배와 어깨가 동시에 뭉쳐서 온몸이 저리고 아파왔다. 매장에 놀러 오는 고객들마다 이 추운데 만삭의 임산부가 혼자 가구 장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경악을 했지만 나는 겨울은 금방 지나가고 아이도 금방 태어난다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하하하 웃어넘겼다.
지금도 그때 나를 딱하게 쳐다보던 고객들이 표정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 넓은 공간을 난방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지만 방법이 있다고 해도 비용이 너무 비쌌다.
손님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나 혼자 있는데 뭘 난방씩이나 하나.
젊어서 그랬는지 너무 독해서 그랬는지 나는 악으로 깡으로 엄동설한 꽁꽁 어는 날씨를 하루하루 견뎠다.
이미 중층 공사를 하는데 돈을 너무 많이 썼다.
게다가 이제 곧 출산을 하면 조리한다고 집에 들어갈 텐데 번거롭게 또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이라도 하나 들여놓고 난방을 할걸 생으로 그 추위를 이기고 있었으니 나도 참 미련하다..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일에 빠져 사느라 춥다는 것은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다만 앤틱가구가 영하의 날씨에 얼어 터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난로가 생기면 내가 쬐기보다 유난히 힘들어 보이는 가구들 옆에 바짝 당겨주고 얼지 마라 얼지 마라... 노래도 불러주었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시간이 흐르고 흘러 출산 날짜가 다가왔다.
나는 애들을 다들 좀 크게 낳았는데 얘도 뱃속서 그 고생을 하면서도 무럭무럭 잘만 자라서 예정일보다 조금 일찍 아이고... 더 키우면 자연분만 못하십니다..라는 의사의 걱정을 들으며 출산을 맞이하게 되었다.
경험은 모든 것의 어머니 인지라.
앞의 두 명을 자연분만으로 낳아 키운 나는 셋째 출산을 하러 입원 짐을 싸면서 아주 재미있는 소설책 두권이랑 그 날짜 신문을 챙겼다.
진통이 무서워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면 중간중간 다른 것에 신경을 쏟아봐야지.
그러면 그 고통이 얼마나 무뎌질지 궁금했다.
모든 예정된 일은 일어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니까 진통은 당연하게 밀려왔고
나는 마지막 두 시간 정도를 빼놓고는 소설책도 읽고 신문도 읽고 시어머니랑 농담도 하고 애들 들어오라 그래서 수다도 떨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사실 진통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이 오면 좀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물론 통증은 있지만 어떤 순간이 되면 뱃속 아기가 나에게 리듬을 불러주는 것 같은 착각 그래서 내 몸이 알아서 힘을 주고 알아서 리듬을 타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그때까지 힘을 주라느니 숨을 잘 쉬라느니 계속 잔소리를 하면서 출산과정을 주도하던 의사나 간호사의 말들이 아련히 의식 너머로 사라지고 어느덧 뱃속 아기가 나에게 불러주는 하낫둘 하낫둘 그 리듬에 내가 맞춰지는 시간이었다.
아... 이래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계의 동물들이 의사도 간호사도 없지만 다 알아서 풀숲에 들어가서 밤새 산고를 치르고 아기를 품에 안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신비의 순간이었다.
너무나 감사하게 난 그 신비를 세 번이나 경험했고 신의 선물 세 개를 받았다.
(앤틱을 누가 갈까 19 -니가 치질을 알아? 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