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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푸드에서 패스트푸드로 진화. 교토 고등어 봉초밥

185. 교토 기온 이즈우(いづう) 스시

by 초빼이

메콩강의 생선 저장법, 일본으로 건너와 스시(ずし)가 되다.


일본을 대표하는 상징을 꼽으라고 한다면 보통 후지산과 벚꽃, 스시 정도를 들지 않을까 한다. 일본의 스시는 이젠 일본만의 음식이 아닌 미주와 유럽에서도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세계의 음식'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지의 2020년 미국의 식당과 관련한 기사에서 모든 식당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였지만 유일하게 스시식당만이 증가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심지어 미국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도쿄 긴자의 유명 스시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이 전 세계로 방영되며 스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제는 세계인의 음식이 된 스시의 기원을 찾기 위해선 인도차이나 반도로 가야한다.

메콩강은 티베트 고원에서 시작하여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뻗은 긴 강이다. 그 길이가 워낙 길어 중국과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 등 6개 국가의 영토를 통과하는 세계에서 12번째로 길고 10번째로 유수량이 많은 강이기도 하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메콩강을 따라 온대기후부터 아열대 기후가 함께 존재한다. 아열대 기후는 여름은 매우 덥고 겨울은 온화한 계절이 특징이다. 기온이 높으니 음식이나 식재료가 쉽게 상하기도 한다. 특히 메콩강 일대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겐 갓 잡은 민물생선을 손질해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것은 생존과 관련된 일이었다.

도쿄_스키야바시지로_아베오바마회동.jpg 도쿄 스키야바시 지로(すきやばし次郎)_(사진 출처 : 위키백과)

생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이 지역 사람들은 소금과 쌀을 사용했다. 바다를 끼고 있어 소금을 구하기 쉬웠고, 전 세계 쌀 생산량의 1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인도차이나 반도의 쌀은 풍족했다. 소금은 생선을 절여 젓갈로 만들었고, 쌀밥은 생선을 발효시켜 절임의 형태로 만들었다. 이를 밥 위에 올려 먹거나 찬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 이들의 지혜는 이내 인접했던 중국의 남부로 전파되었다(4세기 경). 중국에서는 소금에 절여 삭히는 방법을 '자(鮓)'로, 쌀밥에 발효시키는 방법을 '지(鮨)'로 구분했다. 이 두 가지 생선 저장법은 중국과 한반도(우리나라에는 '식혜'의 형태에서 옛 자취를 찾을 수 있다)를 거쳐 다시 일본으로 전해져 '스시'라는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일본의 음식이 탄생하는데 이바지하였다.


일본으로 전파(야요이 시대로 추정(신석기~철기시대))된 생선의 보존법은 처음엔 나레즈시(熟れ鮨)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헤이안(710~794)에서 가마쿠라 시대(1185~1333)에 일본 전국으로 확산되며 다양한 생선으로 만든 나레즈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후나즈시(鮒寿司)는 붕어를 소금, 밥과 함께 장기간 발효시킨 음식이다. 나레즈시의 한갈래로 시가현의 비와호에서 잡히는 '니고로부나(ニゴロブナ, 니고로 붕어)'를 사용한 시가현 향토 음식의 하나다.


봄이 되면 비와호 수심 30m 정도의 호수 바닥에 서식하던 '니고로부나'가 산란을 위해 호수가로 올라오는데 이때 붕어를 잡아 나레즈시로 만든다. 나레즈시나 후나즈시 모두 소금에 절인 후 1차 발효를 시키고 다시 밥을 넣어 2차 발효를 시켰다. 보통 3개월에서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2차 발효를 마친 후 취식을 할 땐 밥을 걷어내고 먹었다. 후나즈시는 나레즈시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옛 스시의 원형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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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레즈시(熟れ鮨)(사진출처 : 일본 매거진 DANCYU) / 2. 나마나레즈시(なまなれ鮨)(사진출처 : JA교토)

14세기에서 16세기 후반(무로마치 시대)에는 '나마나레 또는 나마나리(生成、なまなれ、なまなり)'스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레즈시가 보통 몇 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넘는 발효 과정을 거치는 반면 나마나레 스시는 발효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사케나 식초를 사용했다. 발효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2~1개월) 발효에 의해 생기는 신맛과 냄새가 덜했다. 나레즈시와 만드는 법은 거의 비슷했으나 중간에서 '발효를 멈춘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밥의 신맛이 덜했기에 이때부터는 요즘의 스시와 같이 밥을 버리지 않고 생선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입에 올렸던 스시도 바로 이 나마나레 스시였다.


17세기에서 19세기(에도 시대)에 이르러서야 현재 우리가 먹는 스시와 유사한 스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야즈시(早寿司、早ずし)는 쌀의 젖산 발효를 대신해 발효식품이었던 식초를 쌀과 섞어 신맛을 내 생선과 밥을 동시에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짧게는 몇 주에서 몇 개월의 발효 기간이 필요했던 '슬로 푸드' 스시가 식초라는 첨가제 하나로 '패스트푸드'로 바뀌어 버린 것. 치라시 스시(散らし寿司), 이나리 스시(稲荷寿司), 마키즈시(巻寿司), 니기리즈시(握り寿司) 등은 모두 이 시기에 생겨났다.


손으로 쥔 밥 위에 생선 한 조각을 올리는 오늘날의 니기리즈시 스타일은 1820~30년대 도쿄(당시에는 에도)에서 탄생했다. 1824년 료고쿠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요리사 하나야 요헤이(1799~1858)이 오늘날 형태의 니기리즈시를 완성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밥의 크기가 지금의 3배 정도로 컸었고, 식초는 절반 정도만 썼는데 붉은 식초(赤酢)를 사용했다고 하니 지금의 모습과는 여전히 조금은 다르긴 하다.* (* 위키피디아 영문판. 일부 인용)


에도시대까지 스시의 변화가 발효와 발효를 대체하는 방법 등의 혁신이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만드는 방법의 변화에 치중했다면, 가장 최근에 일어난 스시의 변화는 스시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방법에 의한 변화였다. 히가시 오사카에서 '입식 스시집(立ち喰い)'을 운영하던 시라이시 요시아키(白石義明)는 1958년 '겐로쿠 스시(元禄寿司)'라는 세계 최초의 회전스시(回転寿司)집을 연다. 인건비 부담과 인력난으로 고민하던 그는 아사히 맥주 공장을 견학하다가 맥주병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5년 여에 걸친 연구 끝에 컨베이어 벨트가 부착된 식탁과 스시 접시 시스템을 개발하고 실용신안으로 등록했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에 겐로쿠 스시가 레스토랑을 열고 상을 받으며 일본에서는 회전스시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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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젠로쿠 스시 혼텐 / 2. 젠로쿠 스시 내부(출처 : 젠로쿠 스시 웹사이트)

나레즈시로 시작한 일본의 슬로푸드 스시는 하야즈시의 시대를 거쳐 에도마에 니기리즈시 시대에 이르러 패스트푸드의 형태로 바뀌며 스시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를 통해 귀족들만이 즐기던 스시를 서민들도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스시를 제공하는 시스템인 회전스시가 개발되면서 대량생산과 저가형 스시, 그리고 셀프서비스로 요약할 수 있는 스시의 산업화까지 이루게 된다. 스시 장인들의 손 끝에서 예술적으로 만들어지던, 고급 음식의 상징이었던 스시가 참으로 오랜 시간과 오랜 변화를 겪으며 현대의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까지 진화하였다. 한 가지 음식을 가지고 만드는 다양한 변화에서 일본인들의 성향을 읽을 수 있기도 하다.



'鮨', '鮓', '寿司', 'すし'. 도대체 스시라는 글자는 무엇인가?


오늘날의 스시는 '초밥(식초에 절인 밥)'이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시큼하게 발효된 생선'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큼하다'라는 뜻의 일본어 고어 형용사가 바로 '酸し(스시)'다. 에도 시대의 학자 카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의 저서 '일본석명(日本釈名. 1699)과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동아(東雅,1717)'에서도 "스시는 酸し(すし)에서 왔다"라고 설명한다. 결국 스시라는 말은 '시큼하게 발효된 생선'에서 시작하여 '시큼한 음식'을 의미하며 '스시'라는 음식의 이름이 되었다. 소리와 의미가 먼저 생기고, 그 뒤를 이어 한자어 중 적정한 글자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


'鮨(ぎ(기), 스시)'는 '물고기'를 뜻하는 부수(어, 魚)와 '맛있다'(지, 旨)라는 뜻의 글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이다. 기원전 5~3세기부터 쓰인 글자로 숟가락을 뜻하는 '匕'와 입을 뜻하는 '口'(후에 날 일자로 바뀜)를 합해 만들어진 '기'자는 원래 입술로 숟가락을 핥는다라는 의미의 '맛있다'라는 뜻. 위에서 말한 대로 '鮨'는 소금에 절인 해산물을 가리키는 글자였다. 일본에서는 이 글자를 가져와 발효생선을 지칭하는 글자로 사용되었다. '鮓(さ(사), 스시)'는 1~2세기경 사전에 등장하는 글자로 '물고기를 저장하는 용기'나 '저장한 생선'를 뜻한다. 일본에서는 나레즈시와 같이 '절여서 저장하는 생선'을 뜻하는 글자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 웹사이트 스시유니버시티재팬, 타비모리,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鮨", "鮓" and "寿司", 2025.05.31, 일부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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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鮨(ぎ(기), 스시)'는 맛있는 발효 생산(젓갈 등)을 뜻했고, '鮓(さ(사), 스시)는 그 발효 생선을 담아두는 용기나 저장식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스시'라는 음식이 일본의 문헌에서 '한자'로 처음 나타나는 것은 나라시대의 법령이었다. 718년 제정된 법전 '養老律令(양로율령)의 조세 규정 중 "鰒二斗、貽貝三斗、雑五斗(전복스시 2말, 어패류(홍합)스시 3말, 잡(여러것이 섞인 것)스시 5말)"라는 구절에서 처음 나온다. 이 시기에 이미 발효된 생선 저장식은 '鮨, 鮓'로 쓰고 'すし'로 읽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시(すし)'라는 글자의 표현 방법은 에도시대 이후 더욱 다양해졌다. '나레즈시'에서 '하야즈시(早ずし)' 그리고 '에도마에 니기리즈시(江戸前にぎりずし)'로 변화하는데 이와 함께 스시를 표현하는 한자 표기도 함께 변화하였다. 나레즈시는 주로 '鮨, 鮓'를, 하야즈시가 나온 이후에는 '鮨, 鮓'도 사용했지만 새로운 글자의 조합인 '寿司'도 쓰이기 시작했다. 이 표현은 '스시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순수하게 음만 따서 사용한 음차 글자다. 일본에서는 이런 식으로 뜻은 무시하고 발음만 맞춰 한자를 붙인 것을 '当て字(아테지)'라고 하는데, '寿司'는 아테지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되기도 한다. '목숨, 수명, 장수, 축하'를 나타내는 '寿(수)'자와 '다스리다, 담당하다, 관리하다'라는 의미의 '司'를 붙여 만들었다. '축하를 관리한다, 장수를 관리한다'라는 길상적인 의미를 따 온 것으로 보인다. 스시라는 맛있는 음식에 '축하나 장수'라는 의미를 덧붙이고 싶었던 상인들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지역을 나누면 관동지방은 '鮨'을 간사이 지방에서는 '鮓', 전국적으로는 '寿司'를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현'별로 보면 42개 현에서 '鮨', 20개 현에서 'すし', 17개 현에서 '寿司', 그리고 1개 현에서 '鮓'을 사용한다고 한다.** 스시라는 음식처럼 표기도 이렇게 어렵다.(** 웹사이트 스시유니버시티재팬, 타비모리,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鮨", "鮓" and "寿司", 2025.05.31, 일부발췌)

스시라는 음식처럼 표기도 이렇게 어렵다.



슬로 푸드에서 패스트푸드로 진화하는 단계의 가교, 교토의 고등어 봉초밥 전문 이즈우(いづう)


이즈우(いづう)스시는 교토의 기온지역에 자리한 유서 깊은 스시집이다.

에도시대인 1781년, 초대 사장인 '이즈미야 우헤에(いづみや卯兵衛)'가 창립하여 영업을 시작하였다. 가게의 상호도 초대 사장의 이름을 따 '이즈우'라 붙였다. 개업 초부터 이즈우는 '사바스가타즈시(鯖姿寿司, 고등어 초밥)'를 명물로 내세우며 교토의 스시 전문점으로 자리 잡았다. 냉장이나 냉동기술이 발달하지 없었던 18세기에 내륙인 교토에서 스시 전문점이라니? 심지어 청어도 바짝 말린 상태로 이송해 오던 교토가 아닌가? 이즈우라는 곳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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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바마에서 교토까지 고등어의 길(사바로도) 지도 / 2. 사바로도 기점 오바마의 휴게소 풍경 (사진출처 : 야후재팬)


청어의 길과 일부를 공유했던 '고등어의 길(사바로도(사바카이도), 鯖街道)'은 오바마 항에서 옛 와카사(若狭)의 수도였던 교토로 이어지는 길을 가리킨다. 내륙에 자리한 교토는 신선한 생선을 구하기 어려웠기에 바다와 가장 가까운 오바마의 와카사만을 통해 수송해 온 고등어를 소비했다. 냉장이나 냉동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기였던지라 교토까지 이송하는 고등어는 보통 미리 소금에 절여 부패를 막았다.(겨울에는 선어 상태로 하루 만에 운반) 우리의 안동 간고등어가 머리속에 떠 올랐다.


와카사 만은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지역이라 어족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고등어는 대량 어획이 가능했고, 단가가 낮아 대중적 식재료로 각광받았다. 당시 교토에는 수백 개의 사찰과 황궁이 있었고 그 황궁과 사찰에서는 제사, 제례, 궁정 행사가 수시로 열렸으며 귀족과 무사, 상인들을 위한 연회도 끊이지 않았다. 당연히 이를 위한 수산물의 수요는 막대했고 '대량, 저가, 지속 공급이 가능'한 고등어가 교토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엔 최고의 어류였다. 풍족한 식재료의 안정적 공급은 다양한 요리를 탄생하게 했다.


산간지역에서는 보존성을 높인 된장 조림이나 구이나 누카즈케(糠漬け, ぬかづけ / 누카즈케는 쌀겨에 소금을 섞어서 삭혀낸 '누카도코(ぬか床)'에 오이, 당근 등의 채소를 넣고 절여낸 일본 음식이다. 누카미소즈케(糠味噌漬け), 도부즈케(どぶ漬け), 도보즈케(どぼ漬け) 등으로도 불리며 지역에 따라 고기, 생선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등이 만들어졌다. 사찰에서는 일반적인 사용은 제한했지만 손님 접대를 위한 의례용 음식으로 제공되기도 했다. 그리고 제사와 축제에는 고등어로 만든 스시가 반드시 등장했다. 축제의 음식이었다. 축제와 제례에 쓰였으니 당연히 교토를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사바즈시는 12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는 스시의 옛 형태인 '나레즈시'로 만들어졌다. 이어 고등어를 식초로 처리하고 절임으로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며 발효대신 식초(초산)를 사용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나마나레 즈시). 17세기 일본의 요리와 식문화를 기록한 책 '료오리 모노가타리(料理物語, 1643)'에는 "고등어는 충분히 소금에 절인 다음, 식초로 씻어 밥과 함께 눌러야 한다"라며 고등어 초절임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했고, '료오리 호가쿠쇼(料理方角抄, 1695)에는 고등어 손질법과 밥의 배합 비율까지 기록된 것을 볼 때 이 시기에 이미 현대의 사바즈시 조리법의 기본은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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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우 고등어 봉스시(鯖姿寿司, 사바수가타즈시)(출처 : 이즈우 웹사이트)

에도 후기인 18~19세기에는 사바스시를 만드는 기술이 더욱 정교해진다. 에도 후기의 스시 조리법과 지역적 차이를 기록한 사료 '모리사다 만코(守貞漫稿, 1837~1853)'에는 교토의 사바즈시에 대해 "교토의 스시는 고등어를 가장 귀하게 여긴다. 두툼한 살을 고르고, 밥을 많이 넣지 않으며, 약하게 눌러 풍미를 살린다"라 설명하고 있다.


이즈우는 창업 당시 기온의 화류계가 자리 잡고 있던 기온에 위치해 있었다. 창업주인 '우헤에'씨는 와카사에서 온 염장 고등어가 교토에서 유행하자 이를 축제용 사바즈시로 만들어 기온의 게이샤들이 있는 지역(기온)으로 배달하기 시작했다. 봉스시(鯖姿寿司)는 '姿(수가타, すがた)'라는 뜻대로 '통째의 모습'이라는 의미를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 고등어의 몸통 한 토막이 아닌 한 마리를 모두 써 형태를 유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즈우는 이 상품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사바즈시=이즈우의 봉스시'로 인지될 정도로 홍보하였다.

고등어 한 마리의 뼈와 가시를 손질한 뒤 밥을 넣어 '원통형'으로 만든다. 위쪽은 고등어 껍질이 아래쪽은 밥이 보이도록 초밥의 형태를 성형하는데 이를 다시 두툼한 다시마로 감싸 수분의 증발을 막고 향을 가뒀다. 거기에 두툼한 고등어 살은 '우(う)'자로, 밥 부분은 '토끼(ウサギ)' 형태를 떠 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 재미도 더했다.


상류층들의 음식이었던 스시가 서민들의 손에도 들릴 수 있게 되었고, 아오리마츠리(봄), 기온 마츠리(여름), 지다이 마츠리(가을)와 같은 특별한 날 먹을 수 있던 축제의 음식이 일상의 음식이 되었다. 거기에 토끼 모습을 찾는 재미도 함께 넣었으니 이 음식은 특별한 음식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음식이었기에 내륙의 땅 교토를 상징하는 스시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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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스시 모리아와세 / 2. 고등어 봉스시 / 3. 하코즈시 / 4. 후토마키

초빼이는 교토의 사바스시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교토와 간사이 지역에서 유명한 모든 스시를 맛보고 싶었다. 취재라는 목적보다 욕심이 더 앞섰다. 그래서 주문한 것이 고등어 봉스시와 하코즈시(箱寿司) 그리고 후토마키가 함께 나오는 '교스시 모리아와세(京寿し盛合せ)'를 주문했다. 사바즈시는 교토의 명물이었고, 하코즈시와 후토마키 또한 오사카와 교토 등 간사이 지역을 대표하는 스시였으니 동그란 접시 하나에 교토와 간사이를 모두 담은 메뉴였다. 그런 의미에서 '교스시(京寿し)'라는 이름을 붙였으리라. 교토 사람들에겐 간사이는 교토의 주변이었을테니.


고등어 스시를 입에 넣자마자 신맛이 느껴졌다. 꽤 임팩트 있는 신맛이 치고 올라와 조금은 놀라기도 했다. 그 뒤를 바로 이은 것은 고등어(등 푸른 생선) 특유의 비린내. 염장하고 초절임까지 했지만 고등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특유의 비린내는 완전히 잡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비린내는 아니었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경험의 크기에 비하면 감내할 만한 수준이었다. 밥(샤리)의 식감은 단단한 편이었으며 기본적으로 단맛을 품고 있어 입안에서 오래 씹을수록 단맛을 더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다시마의 향도 조금은 느껴져 한국 사람들에게도 크게 어려운 음식은 아닐 것 같았다. 단, 고등어 스시를 먹은 후엔 반드시 생강초절임 한 조각은 먹어줘야 한다. 그래야 입안에 여운처럼 남은 강한 고등어 스시의 잔재를 없앨 수 있다.


후토마키(太巻)도 임팩트가 강했다.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한 조각 계란말이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순하고 부드러운 음식이라 여겼던 계란말이가 이렇게 진한 맛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은 이날 처음 알았다. 그 뒤를 이어 바로 표고버섯 졸임의 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것이 교토의 야채인가?'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교토의 맛과 향이 한 조각 후토마키에도 스며들어 있음을 실감하며 교요리(京料理)에 한발 더 다가가는 느낌이 들었다. 교토를 몇 번이나 찾았지만 이제야 교토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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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즈시(箱寿司)는 사각형 틀에 재료를 넣은 후 틀이나 돌로 눌러서 만드는 스시다. 밥과 재료의 간격을 좁혀 향과 맛을 가두고 전체적으로 고른 발효가 일어나도록 만드는 스시이기도 하다. 본래 '오사카스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사카의 스시로도 유명하지만, 간사이 지역도 유명한 스시다. 이즈우의 하코즈시는 생선과 밥 사이 향신료로 넣은 '키노메(木の芽)'가 모든 일을 다했다. 일본의 산초(山椒, 산쇼, 우리의 산초와 다름) 나무의 어린 새순을 키노메라 하는데 4~5월에 돋아나는 무척 연하고 향이 강한 어린잎이다. 특히 교요리에서 많이 쓰는 식재료로 '키노메 아이(木の芽和え)'라 부르는 봄철 교요리의 대표적 '향요리'나 생선회, 돼지고기 요리에도 넣으며, 타케노코 고항(죽순밥)에 고명으로도 올린다. 하코즈시에 산뜻하고 기분 좋은 향을 더하며 청량감까지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교토에서도 그리고 일본에서도 정통 초밥은 처음이었지만 식사 후 찾아오는 만족감은 거부할 수 없었다.

이자카야나 회전스시 집에서 스시를 먹었던 기억이 전부였던 초빼이에게 '이즈우'에서의 경험은 굉장한 추억이 될 것이 분명했다. 스시가 '슬로 푸드'에서 '패스트푸드'로 변신하는 '중간 단계'의 스시를 경험한 것도 좋았지만, 바다를 접하지 않은 교토에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교토를 대표하는 음식 리스트에 '스시'를 올릴 수 있었던 이유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 각별했다. 바다를 접하지 않은 안동의 간고등어 구이가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좀 더 확실히 깨달았다. 범위를 조금 더 넓혀 간사이를 대표하는 스시들을 경험해 볼 수 있었던 것도 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조금 더 음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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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팁]

1. 매장명 : 이즈우(いづう)

2. 주소 : 367 Kiyomotocho, Higashiyama Ward, Kyoto

3. 영업시간 : 수~월 11:00~22:00 / 정기휴무 화요일

4. 주차장 : 별도의 주차장은 없다.

5. 참고

- 예산 : 1인당 2,000~4,000엔.

- 연락처 : +81-75-561-0751

6. 이용 시 팁

- 현금, 카드 결제.

- 미슐랭 가이드 맛집이다. 현지인들과 외국인들 모두 찾는 곳.

- 가급적 오픈런 할 것을 추천드린다. 선물용으로 포장된 고등어 봉초밥도 판매한다.


https://maps.app.goo.gl/AhzNYKrG1tWZDNPz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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