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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태민 Aug 28. 2023

엄마 찾아 삼만리

22년 11월,


새롭게 배우고 공부하고, 처음 도전해 보는 것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더 바쁘게, 나의 시간에 틈이 생기지 않기를 원했다. 삶에서 여유가 없어지기를 바랐다.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며 놀던 주변 친구들과도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바뀌어버린 내 모습을 어색해하기도 혹은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기도 했다. 함께 잘 어울리던 내가 조금씩 친구들을 멀리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을 끊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고 바라는 분명한 목표가 생겼고, 또 엄마가 아프기에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도 생겨버렸다. 매일 매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했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들은 외면받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매일 밤낮없이 꽉 찬 하루들이 자주 힘들기도 했지만, 언젠가 나에게 꼭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스스로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자랑스러운 모습이고 싶었다.




엄마의 항암치료 과정이 세 달 정도 지나자 조금은 안정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참 다행히도 동생의 목소리에서도 조금씩 여유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밥도 예전보다 잘 먹고, 잠도 잘 잔다고 했다. 엄마도 요즘 들어 기운이 조금 나는 듯해 보였다.


아들이 보고 싶었던 엄마가 어느 날 말했다. '아들, 이번 주말에 바쁜 일 없으면 엄마 보러 서울 한번 안 올래?' 힘들게 꺼냈을 엄마의 말에서 수많은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다. 바쁜 나의 일상을 누구보다 엄마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회사와 학원을 다니고, 주말에는 혼자 뭐라도 해보겠다고 열심히 아등바등하고 있는 나를. 엄마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에게 늘 응원을 해주었지만 항상 끝에는 걱정과 염려가 따라다녔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스트레스받지 않게 적당히 해..'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티켓을 구매하고 필요한 짐들을 하나씩 챙겼다. 그러다 문뜩 이번주 스케줄과 주말에 하려고 적어둔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울에 한번 다녀오게 된다면 내가 계획했던 일들을 제때 마무리하지 못할게 분명했다. 순간 오랜만에 엄마를 만난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찝찝한 기분으로 뒤덮여버렸다. 물론 데드라인이 시급한 회사 업무와 같은 일들은 아니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약속한 '나만의 일'이었다. 나에겐 가족만큼이나 중요한 일들이었다.


결국 엄마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가는 내 가방 안에는 노트북과 해야 할 일들이 가득 차있었다. 몸도 마음도 가볍지가 않았다. 행복하고 설레는 감정보다, 불편하고 찝찝한 기분이 더 컸다. 집에서 나와 고속버스를 타러 가는 길 내내 불안하고 초조했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될까?', '아직 난 많이 부족하니까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바쁘게 하루를 꽉 채우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고, 조금이라도 쉬면 남들보다 뒤처질 것만 같았다.


불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히고자,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조금이라도, 뭐라도 더 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전날 새벽 늦게까지 책을 읽고 공부를 했던 탓일까? 자꾸 졸리기만 하고 속이 좋지 않았다. 꾹 참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흔들리는 노트북 화면을 바라볼수록 속이 더 메스꺼워졌다. 괜히 속상하고 짜증이 났다. 무거운 짐들만 잔뜩 가져온 것 같았다. '어차피 제대로 하지도 못할 거, 괜히 챙겨 와서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긴 시간 내내 자책과 한숨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많이 야위어져 있었다. 살도 많이 빠져있었고 또 키도 많이 줄어있었다. '압박골절'이라는 병의 증상 때문에 키가 10cm 가까이 줄어들어 있었다. 항암치료받는 과정이 많이 힘들고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아진 엄마가 내 품 안에 쏙 안겼다. 힘들고 아팠을 엄마가 안쓰러웠다. 하루하루 잘 버텨주고 있어서 많이 고마웠다.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혀를 세게 깨물었다. '엄마 작아지니까 더 귀엽네?' 괜히 실없는 소리만 했다. 엄마의 등을 길게 쓰다듬어 주었다. 동생과도 오랜만에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동생도 많이 힘들고 지쳐 보였다. 엄마 못지않게 하루하루 간절하고 힘들게 버텨주고 있었다.

동생의 지난 눈물과 한숨에 미안했고, 또 많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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