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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Dec 07. 2023

어느 완벽한 휴가

치워 주실래요?

그녀는 갑작스러운 휴가가 낯설었다. 이런저런 자잘한 집안일에 시달리느라 얼마 전 그녀의 남편이 삼일 정도 집을 비운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퇴근한 그와 저녁을 먹다가 잡다한 얘기 중에 다시 알게 된 것이다. 목금토, 이박 삼일.

그 시간 동안 그녀의 아이들은 아마도 각각 작업실과 기숙사에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며칠이 그녀에게  주어졌다.

하필이면 발이 불편했다. 얼마 전 오래 그녀를 괴롭히던 발바닥통증때문에 외과시술을 받은 참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쪽이냐면  불편한 발을 끌고서라도 혼자 여행을 하겠다는 쪽이었다.

그런 생각이 휘발되기 전에 바로 검색창을 열어 남쪽 섬에 가는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시간과 비용을 결정하고 바로 여성전용숙소에 예약을 신청했다. 그렇게 비행기티켓과 숙소 예약은 단번에 끝났다.

인원을 기입하는 창에 1명이라고 쓰는 일이 어색했다.


섬으로 가기로 한 전날 저녁에는 날씨가 소란했다. 겨울비라고 하기엔 거칠게 비가 내렸고 바람도 심했다. 여행을 가기로 한 그다음 날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해가 뜨기 전이지만 맑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침을 식탁에 차리고 곧 캐리어를 끌고 나가는 남편을 배웅했다. 상처가 있는 발에 방수테이프를 붙이고 간단히 샤워를 하고 젖은 거즈를 떼었다. 뻥 뚫린듯한 세 개의 환부, 짙은 핑크색의 씽크홀처럼 생긴 상처를 식염수로 씻어내고 항생제 연고를 잔뜩 묻힌 거즈를 여러 겹 대고 단단히 고정했다. 방수테이프를 다시 한번 붙이고 양말의 입구를 최대한 벌려 조심스럽게 발을 넣었다. 잠옷바지와 스웻셔츠, 세면도구와 화장품 몇 개를 넣은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었다. 미리 끈을 모두 풀어 느슨하게 벌려 놓았었다.

러시아워가 지난 지하철을 갈아타고 길고 긴 무빙워크를 걸었다. 절뚝이는 그녀를 사람들은 함부로 치고 앞질렀다.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혼자 하는 먼 여행이 처음이라 두려움으로 잠을 설쳤던 그녀는 탑승구에 도착하자 겨우 마음이 놓였다.

탑승시간이 한 시간도 더 남았다.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커다란 창 바깥의 비행기들을 세어 보았다. 이십 분 정도 늦어진 탑승수속이 시작되고 그녀는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가 거의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41C,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일찍 탑승한 승객들 사이를 걸어 자신의 좌석 앞에 섰다. 앉아야 할 좌석 바닥에 작은 검정 가방이 놓여있었다. 창가에 앉은 노인은 누런 멀미봉투를 열려고 온신경을 쓰고 있었다.

가방 좀 치워 주시겠어요?

노인은 그녀를 올려보고 다시 봉투 여는 일에 열중했다. 두리번거리며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때 뒤에 앉은 여자가 일어나 앞쪽을 넘겨 보며 말했다

아빠, 가방 치워 달래잖아

노인은 딸과 눈을 마주치고도 꿈쩍을 하지 않았다. 딸이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말보다 몸과 손이 먼저 앞으로 나와 가방을 집어 노인에게 건넸다.

그녀는 앉자마자 안전벨트를 채웠다. 다른 사람의 손이 몸에 닿는 느낌이 느껴서 돌려 보았더니 노인이 마른 손으로 튀어나온 그녀의 점퍼 팔부분을 좌석 팔걸이 안쪽으로 꾹꾹 눌러 넣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점퍼의 팔을 잡아 들어 복도 쪽으로 구겨 넣고 탑승구 앞에서 읽기 시작했던 책을 펼쳤다. 마흔 후반에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 작가의 단편집이었다.

다시 그녀는 두 줄도 읽기 전에 옆구리를 찌르는 감각에 놀라 옆에 앉은 노인을 쳐다보았다. 노인은 열기 위해 애쓰던 멀미 봉투를 내밀었다.

열어드릴까요?

말이 없는 노인에게 봉투의 입을 벌려 건네주었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자마자 옆구리에 또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노인이 좌석 테이블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테이블을 내려주고 잠시 기다린 다음 검정 가방을 테이블에 놓고 창 밖을 보는 노인을 확인하고 다시 책을 펼쳤다.

또 한 번, 노인은 그녀를 호출했다, 물론 가늘고 마른 손가락 끝으로.

이번에는 좌석벨트를 들고 잠그려 애쓰고 있었다.

벨트 해드려요?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을 보며 안전벨트 고리를 눌러 넣으려는데 갑자기 노인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벨트 안으로 몸을 넣어 고정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승용차의 안전벨트처럼 가슴을 지나 허리에 고정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조금은 친해졌는지 노인은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이거 이거 하며 그녀가 죽 늘린 벨트 안으로 몸을 넣으려 했다.

비행기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으셔도 돼요, 허리에만 묶어 잠그시면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벨트를 묶어 보여주며 말했다.

미더워하지 않는 노인은 안전벨트를 잠가 주려는 그녀의 손을 밀쳐냈다. 뒤에 앉은 노인의 딸은 휴대폰을 보며 옆에 앉은 어머니와 이야기 중이었다.

역정이 난 노인은 결국 그녀의 손을 찰싹 때렸다. 힘이라곤 겨우 앉아 있는 일 외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던 노인은 때리고 나무라는 일에는 특기가 있었는지 그녀는 손등이 꽤 아프다고 생각했다. 부라린 눈과 기침하듯 내뱉는 아니야 라는 호통에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갑작스러운 여행에 대한 자책을 하는 순간, 뒤에 앉은 딸이 벌떡 일어났다.

어머 여기 내 자리가 아니네

앞으로 와서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 자리 맞아요?

휴대폰 화면을 열어 티켓을 확인했다

41C

아 여기 42C예요

그녀는 뭔가 억울한 기분이 되어 꽉 찬 비행기에서 아까부터 비어 있던 앞 좌석으로 옮겨 섰다.

 젊은 여자아이가 앞머리를 구루프로 말고 잠들어 있었다. 그녀 좌석에는 여자아이의 것이 분명한 코트가 놓여 있었다.

저기 코트 좀 치워 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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