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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Dec 09. 2023

비대면체크아웃

A룸의 여자

곧 체크아웃시간인데 A룸의 여자가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여성전용스테이를 운영한다. 일인 일실, 혼자 여행 오는 여성들만 이용할 수 있다. 스테이의 모든 일은 비대면으로 이루어진다. 운영자인 나도 숙박자의 얼굴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 숙박자도 나의 전화번호와 계좌번호만 알 뿐이다.

나 역시 여행자였다.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차를 세워두고 마을로 들었다. 별방진에서 내려다본 마을이 새둥지처럼 오목해 다정해 보였다. 마을길을 목적 없이 걷다가 커다란 마당을 두고 서 있는 돌집이 예뻐서 입구의 기다란 돌담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도시로 돌아와 여행사진들을 추리다가 돌담 아래 임대라고 쓰인 나무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돌담과 돌집, 무밭과 당근밭이 얼기설기 멋대로 닿아있는 그곳이 좋았다. 커다란 카페와 밭을 밀어내고 지은 호텔과 리조트가 아니라 자그마한 스테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니까.

남편은 갑자기 제주도로 이사를 하자고 하는 내게 이유를 따져 묻고 화를 내기보다 나를 먼저 걱정했다. 혹시 자신이 모를 무엇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싶어 했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태어나고 자라고 어른이 된 익숙한 도시를, 자신의 생활과 사람을 모두 두고 떠나야 하는 일임에도 내게 다시 한번 묻는 것으로 끝이었다. 남편의 일이 다른 이들보다는 자유로운 것이라고 해도 그랬다.

나는 충동적이라고 생각할 만큼 느닷없던 나의 제안을 받아 준 그를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행복해야 했다. 철거부터 일일이 인부들과 같이 돌을 나르면서도 튀어나온 마당의 돌은 치우지 않았다. 낡은 돌집의 분위기가 지워지지 않도록 조금 낡은 책상과 의자, 식탁과 조명 같은 것들을 들였다. 창에 레이스를 걸고 욕실에 둘 향기 좋은 목욕용품들을 검색했다.  밤이 늦도록  화병하나 베개하나까지 챙겼다.

나의 스테이, ”하도리, 혼자서 “

나는 이곳을 홀로 오는 여성여행자들만 지낼 수 있는 곳으로 정해두었다.


코로나 때문에 국내여행을, 또 혼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나의 스테이는 거의 하루도 방이 비는 날이 없었다. 방에 놓아둔 노트에 빼곡하게 쓰인 고백서 같은 방명록들을 읽으며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요즈음에는 가끔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 있다. 수요일과 목요일은 여행객이 적은 날이라 A룸은 삼일 만에 여행객을 맞았다.


10시 40분이다. 체크아웃 시간이 10분 지났다.

혼자 여행 오는 여자들은 시간을 지나는 법이 거의 없다. 공용 공간에 놓은 식탁의 스푼, 컵받침들은 늘 깨끗한 상태로 제자리에 놓여 있고 체크아웃을 마친 방에 들어가도 체크인했을 때의 방과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만큼 정돈이 되어 있다.

하지만 A룸의 그녀는 무엇을 하는 걸까. 아직도 마당으로 난 A룸의 창문, 레이스커튼 뒤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10시 50분, 창가의 그림자가 아직도 부산하다. 스테이를 만들 때 뽑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마당에 둔 커다란 돌덩이 위에서 길냥이 춘자가 졸고 있다.

11시, 아무래도 문자를 넣어야겠다.

“우리 스테이 체크아웃 시간은 말씀드린 대로 오전 10시 30분입니다. ”

11시 10분, 문자를 보았을 텐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창문에 아직도 사람모양의 그림자가 서 있다.

아 더 이상은 안 돼,

11시 30분, 나는 졸던 고양이, 춘자가 뒤꼍으로 도망가는 걸 보면서 마당을 건너간다. 비대면 운영을 한 뒤로 처음 있는 일이다. 나로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일부러 기척을 내고 게스트숙소인 별채의 문을 연다. 똑같은 실내화 네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거실로 올라 서면 왼쪽에 있는 방이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녀는 잠에 빠진 것일까. 혹시나 낯이 설어서 밤잠을 설치고 이제야 고단한 잠에 빠져들었을까.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내버려 둘까.


문 앞에서 이미 가지런히 놓인 책과 물컵들을 정리하는 척하며 시간을 끌었다.

더 이상은 어렵다. 대면체크아웃을 해야 한다. 가슴이 떨린다.

문고리에 손을 댄다.

고객님?

미닫이 문이 그대로 열린다, 침대는 정돈되어 있다. 테이블도 의자도 꽃병도 그대로다.

실내가운이 레이스커튼 안쪽에 설치한 블라인드 줄에 걸려 있다.

그리고, 메모.

조용하고 예쁜 공간에서 잘 쉬고 갑니다, 주인의 손길이 하나하나 닿아 있는 것 같아 지내는 내내 따뜻했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샤워하다가 가운이 젖었어요. 구겨지지 말라고 이렇게 걸어 두고 가요. 다음에도 다시 오고 싶어요.


나는 옷걸이에 걸려 말라가는 가운을 본다, 하필이면 창문에 동그란 모자를 걸어 놓았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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