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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Dec 22. 2023

괜찮지 않은 일

돌저글링

괜찮지 않은 일*


 그 방, 아직도 코끝에 냄새가 남아 있는 것 같다. 단골 서점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하얀 시트가 깔려 있던 그 방이 떠올랐다. 유치한 말이지만  청춘이라고 믿었던 자신이 다 휘발되어 버린 순간, 내가 마흔 살의 늙은 여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 어떤 방이.

  한동안 수는 분명 택시를 탔다고 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귀가했고 어쩌다 팔이라도 닿으면 몸을 돌려 잠이 들었었다, 불과 일주일 전에야 그런 그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내 잘못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으면 알았을 일이었고 그는 내게 여러 번 말하려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의 인스타 계정을 찾아냈다, sns는 삶의 낭비라며 누구 흉내를 그리 내더니 꾸준히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나와 함께 먹었던 덴동, 같이 만든 눈사람, 벚꽃 떨어진 산책길. 백 여장의 사진 중 대부분은 내게도 익숙했고 심지어 내가 올린 사진과 같은  것도 있었다. 이상할 게 없었다, 그날 올린 부띠크호텔 사진에 달린 딱 한마디의 댓글 말고는.

  "거긴 베이커리가 좋아요"

댓글을 단 이의 계정은 프사하나 없는 비공개였다

 가슴이 왜 철렁했는지 모르겠다, 옷을 입고 나왔고 호텔까지 걸었다. 집에서 너무나 가까운 곳이니까. 넝쿨장미는 담을 넘어 말 그대로 흐드러지고 나는 의심스러운 애인을 찾으러 가고 있다는 목적도 잊은 채 붉은 꽃송이들을 노란색 담과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찍어 인스타에 업로드했다. 

  호텔의 회전문을 밀고 들어갔다. 르 라보, 내가 직접 조향해 선물한 수의  퍼스널 향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고 있었다. 머리칼이 쭈뼛 섰다. 나도 모르게 말이 터져 나왔다. "저기요, 수를 알지요? " 그녀는 회전문을 다시 돌아들어 와 나를 쳐다보았다.

턱선이 드러나게 짧게 자른 까만 커트머리에 이자벨마랑의 헐렁한 티, 밝은 색의 랙앤본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그녀의 표정은 없는 표정을 만들어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어느새 홍대입구가 내려다 보이는 객실창 앞에 그녀와 앉아 있었다.  어떤 말도 하기 전에 나는 이미 화장기 없이 투명한 피부, 생기가 넘쳐나는 젊음에 압도되었다.

 "아니 이제야....언니 글 쓴 다면서요? 나 언니가 쓴 글 다 찾아 읽어요, 알죠? 나 언니 돌로 찍고 싶은 거? 언니만 생각하면 가슴 터질 것 같애, 한 집에 둘이 같이 있다고 생각하면. "


  욕조 위에 바위가 떠 있다

바위엔 얼어버린 동물과 참고 참고 참아서 쌓인 사람들

 식어가는 물속에서 누가 누굴 사랑하는지 모른 채, 우리의 무릎이 닿는다

어두운데 웅크리고 있으면 팔과 다리가 붙고 무거워지고, 그건 바위 같고, 빠지면 절제가 안 되고, 멈춰지지 않고, 병신이 되고,

나는 애인을 만지는 그녀를  만진다**


 단 한마디도 못하고 그 방을 어떻게 나왔을까?

방 안에서 내내 풍기던 르라보의 향수 냄새

수의  품에 안기면 늘 나던 냄새다. 나는 그의 맨가슴에 얼굴을 묻고 살냄새와 섞인 그 완벽한 냄새를 사랑했었다.

 밤에 집에 돌아온 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내 옆에서 잠들어 있다. 내가 다시 조향해 선물한 향수냄새가 난다. 우리 셋이 모두 같은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난다


*-괜찮지 않은 일 <브로콜리 너마저>

**- 돌 저글링 <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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