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하는 일은,
여름에 하는 일은,
김장김치의 빈통을 비워 씻어 말리는 일, 늦봄에 담은 매실청의 매실이 쪼그라들고 뽀글거리는 기포와 노랗게 변하는 걸 지켜보는 일, 오이지를 눌러 놓은 커다랗고 납작한 돌덩이를 건져 솔로 쓱싹 닦아 햇빛에 던져 놓는 일, 에어컨을 욕심껏 틀고 흰 티셔츠를 기다란 집게로 뒤섞어가며 뽀얗게 삶고 냄비에 수저를 넣고 폭폭 끓이는 일, 설탕을 잔뜩 넣은 팥을 조려 유리병 가득 넣어두고 살구, 라즈베리를 으깨어 과일잼을 만드는 일
여름은 엄마와 부지런히 담아 준 열무김치와 내가 담은 오이소박이를 교환하고 믿을만한 곳에서 지은 한약을 오이지와 맞바꾸고 여행 가는 손자에게 보내는 쌈짓돈과 엄마 복달임하시라 보내는 내 통장의 용돈이 오고 가는 계절
설렁설렁 속도 조금만 고춧가루도 액젓도 조금씩만 넣고 새김치를 하고 소고기를 덩어리째 넣고 장조림을 해 뜨거운 손을 물에 담가가며 쪽쪽 찢고 방울토마토를 데쳐 껍질을 벗기고 양파랑 바질을 넣고 올리브유와 레몬즙으로 절이고 압력솥에 중닭이랑 황기 마늘을 넣고 폭폭 끓인다, 여름에는
걸레를 꼭꼭 쥐어짜 축축한 바닥을 훔치고 자꾸만 만수가 되는 제습기의 물통을 물을 또 줄줄 흘려가며 비우고 가늘고 큰 얼굴의 꽃들을 얼음 몇 개 넣은 꽃병에 어지러히 꽂아두고 이슬이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꽃병 앞에서 팔팔 끓인 곰탕을 딱 익은 열무김치만 올려 먹고 쏟아지는 비를 구경만 하다가 참지 못하고 우산을 들고 엉금엉금 웅덩이를 피해 좋아하는 길을 걷는다, 여름에는
아프느라 바빠서 이 모든 것을 조금밖에는 하지 못했지만 여름은 좋다, 몸이 가벼워지고 있고 여름은 아직도 아직도 많이 남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