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물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냐 Aug 06. 2024

여름과 이름

식물들

내가 이름 부를 수 있는 나무들은 거의가 가로수다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걷다가 집 앞 길가에 산딸나무 열매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사 온 동네의 길에는 은행나무나 이팝나무, 마로니에 등이 심겨 있던 예전의 살던 곳과는 다른 가로수들이 심겨 있었다 산딸나무, 찔레, 살구나무 같은 것들.

잎이 꽃처럼 하얗게 되는 산딸나무가 신기해서 나는 금세 이름을 외워두었다 나무마다 이름표가 달려 있어서 살구꽃과 벚꽃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찔레꽃과는 또 다른 꽈리꽃이 얼마나 이쁜 지도 알게 되었다


 어릴 적엔 서울에도 도심공원이 드물었다 사촌들과 집에서 가까운 봉원사 앞 약수터나 평창동 고모집의 뒷산이던 북한산을 올랐다  여의도도 공원이 아니라 광장이던 시절이고 한강도 시민공원이 아니던 시절, 나는 궁에 자주 갔다  떡갈나무와 느티나무, 단풍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배롱나무와 상사화, 으아리들의 이름을 읽어 보았다


고양이 개 반딧불이 풍뎅이 매미 너구리와 같은 동물의 이름들은 어딘가 귀엽고 발랄하다

나무들의 이름은, 그들의 이름은 조용하고 조금은 우울한 것 같다

그리고 여름에 발성하기에는 아무래도 식물의 이름이 어울리는 것 같다

수수꽃다리 수국 능소화, 미루나무 느티나무 플라타너스를 낭독하듯 불러보는 아침, 제 방에서 아이는 잠들어 있고 창으로 밤새 밤이 식혀놓은 공기가 살갗에 닿고 따라 놓은 물 잔에 조그마한 물방울이 맺히고 있다 아주 조용해진 것 같다 진공상태로 혼자 놓여 있는 기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