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씨앗티즌 Feb 17. 2022

외로움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외로움은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지만, 그 본질은 어려울 때 손 내밀 사람,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 


데이비드 리스먼의 ‘외로운 군중’이란 표현에서 볼 수 있듯, 함께 있으나 홀로 남은 존재의 감정이 외로움이다. 홀로 남겨진 존재는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의문을 품게 되고,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며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 혐오를 자신 안에만 담아 둘 수 있는 이는 드물다. 그 혐오는 반드시 타인을 향해 간다. 그 혐오는 차별이 자라나는 토대가 되고 종래에는 연대가 필요조건인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 


출처 : 김만권(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외로움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한겨레, 2021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4471.html


<전체주의의 기원>(1951)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저작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조금 수상하다. 우리말로는 이상할 것 없는 이 책의 영문 제목은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정확하게는 <전체주의의 기원들>이다. 그런데 기원이 여러 개라고 하면 어떤 기원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가려내야만 하고, 그런 이야기가 없다면 기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 없는 일이 된다.


이 문제를 정확히 파악했던 정치철학자 에릭 푀겔린이 아렌트에게 물었다. ‘이 책이 진정 기원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렌트의 대답은 이랬다. ‘아니다! 이 책은 기원이 아니라 전체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성요소들이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떻게 전체주의에 들어와 견고해졌는지에 관한 역사적 견해를 담고 있다.’


이 저작에서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데 결론과 다름없는 마지막 장에 이르면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요소를 꺼내놓는다. “비전체주의 세계에서 인간이 전체주의적 지배를 준비하도록 만드는 것은, 한때는 우리가 노인과 같이 어떤 소외된 사회적 조건에서 겪는 고통이라 보았던, 외로움이 우리의 세기에 그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져가고 있는 대중들의 일상적 경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외로움은 왜 정치적으로 위험한 것일까? 외로움은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지만, 그 본질은 어려울 때 손 내밀 사람,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 데이비드 리스먼의 ‘외로운 군중’이란 표현에서 볼 수 있듯, 함께 있으나 홀로 남은 존재의 감정이 외로움이다. 홀로 남겨진 존재는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의문을 품게 되고,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며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 혐오를 자신 안에만 담아둘 수 있는 이는 드물다. 그 혐오는 반드시 타인을 향해 간다. 그 혐오는 차별이 자라나는 토대가 되고 종래에는 연대가 필요조건인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


그래서 2018년 영국이 국민 중 900만명이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고서와 함께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한 사례를 그냥 흘려 보지 않았으면 한다. 영국은 장관 임명에 이어 9개 정부부처가 협력해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안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2020년엔 2천만 파운드가 넘는 재정을 필요한 곳에 배정하고, 기업과 시민사회 공동체와 이 문제를 같이 해소하기 위한 대책까지 내놓았다. 단순히 외로움을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만 보았다면 가능하지 않은 규모의 정책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떨까? 우리나라엔 외로움과 관련된 공식적 통계가 없다. 다만 외로움의 현실을 엿볼 수 있는, 2018년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는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6%가 ‘자주, 거의 항상 외롭다’고 하여 ‘상시적 외로움’을 호소했다. 이 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우리나라에선 젊을수록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보고다. 20대 응답자 중 40%가 상시적 외로움을 호소했는데, 이는 30대 29%, 40대 25%, 50대 20%, 60대 이상 17%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도 14%로 이 역시 다른 세대보다 훨씬 낮았다.


이런 응답은 당대 우리가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세계의 모습을 반영한다. 점점 더 서로에게 손 내밀 곳 없는 세계를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코로나가 몰아닥친 작년 응급실에서 확인된 자살시도자를 보면 20대가 제일 많았으며 남녀 모두 증가율이 1, 2위였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자기책임의 윤리’로 포장된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도움을 청할 곳 없는 이들이 만들어갈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손 내밀 곳이 점점 줄어드는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인 공정성 논의가 ‘무임승차’ 논란 속에 차별과 혐오와 얽혀드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뿐만 아니라 당대 세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손 내밀 곳이 줄어드는 이들이 그 이유를 오히려 ‘할증요금’을 내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더하여 그 차별과 혐오가, 평등과 연대를 약속했으나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현실을 직시할 때다.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의 상태가 아니다. 외로움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씨앗티즌이 만난 예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