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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타로를 보는 당신에게

한 해를 갈무리하는 마지막 달에

by 홍재희 Hong Jaehee


1.​


새해를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올해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타로점을 보고 싶다거나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옵니다. 새해 운세를 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올 한 해를 돌아보며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도, 세밑이 되니 외롭고 적적하다는 사람도, 나이 들어가는데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서 불안하다는 사람도,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데 내년에 어떻게 될지 물어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 친구, 지인 등등 다양합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그 일 자체가 고도의 집중과 몰입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 따로 사람을 만나려고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저에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그리고 사랑, 가족, 돈, 일 등과 관련한 그의 고민과 불안과 문제를, 그의 인생에 대해 타로로 무언가를 들려주는 일은 저한테도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시간을 쪼개고 내어서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는 이유는, 내게 연락한 그들의 마음이 헤아려져서 그들의 고민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이기 때문이며, 또한 제 삶을 돌아보는 거울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2.


​연락이 왔습니다. 새해 새로운 연애를 할 수 있을지 연애점을 봐달라 했습니다. 전에 사귄 사람과 질리고 질릴 대로 오만정이 다 떨어져서 헤어졌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은 좀 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상대는 새로운 연애를 시작해서 과거를 빨리 잊고 싶다고 대답하더군요. 진짜 사랑을 하고 싶어요. 진짜(? 그렇다면 가짜 사랑도 있단 말인가?)


사랑을 갈구하는 그에게 타로점을 봐주었습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되신 거 같네요. 내년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있겠지만 원하는 그런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 건 쉽지 않을 거 같아요. 그러자 상대는 헤어진 애인을 욕했습니다. 다 그 미친 X 때문이라고요. 얼마나 좋아했으면 사랑했으면 오죽했을까 상처가 오죽 컸으면 그랬을까도 싶었지만 저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헤어졌건 지난 사랑을 폄하하진 마세요. 본인이 사랑했던 안 했던 본인이 선택한 관계이며 그런 사람을 사귀었던 건 본인이잖아요. 누구를 만났던 자신이 관계 맺은 사람을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자기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아무리 모자라고 미숙하고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과 사귀었을지언정, 서툴기 짝이 없는 진흙탕 연애, 잘못된 사랑이었을지언정 상대방 탓을 하고 남을 비난하고 비하하지 않습니다. 그건 자신에게 욕하는 것과 똑같아요. 제가 볼 때 진짜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제대로 관계 맺는 법부터 배우셔야 할 거 같습니다.



​또 다른 00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요즘 뭐 하세요? 아, 또 타로 봐달라는 연락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타로 봐드릴까요? 물었더니 아뇨. 그냥 만나고 싶어요. 언제 시간 되세요? 이십 대 홀딱 반해서 뭘 몰라서 후다닥 해치운 결혼(그녀 자신의 표현)이 소위 콩깍지가 벗겨진 후에 이혼과 우울증으로 돌아온 그녀. 이 남자 어때요? 저 남자 어때요? 한동안 줄구장창 소개팅한 남자마다 결혼점을 봐달라 해서 제가 금사빠예요?라고 놀렸던 그녀.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감독님. 저 이젠 혼자가 편해요. 엥? 진짜요? 제가 남자 보는 눈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안 만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자신은 남자 보는 눈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녀에게 저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00은 남자 보는 눈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을 보는 눈이 없는 거예요.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다 좋은 건 아네요. 홀로 있는 걸 즐기는 게 좋은 거죠. 그게 달라요? 네. 다릅니다.

​​


3.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타인과 관계 맺고 싶은 게 사람의 본성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 그 관계에서 멀어져 잠시 '홀로' 있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혼자'와 '홀로'는 다릅니다. 혼자는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다는 외로움이지만 홀로는 스스로 홀로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혼자 있으면 사회성이 결여된다 사람이 괴팍해진다 사람이 이상해진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혼자 있어도 홀로 있을 수 있는 사람, 홀로 -있음을, 스스로 존재함을 즐기는 사람은 보기에는 혼자일지라도 홀로 즐겁습니다.



근원적으로 자아가 취약한 사람


자기가 누군지 자신을 모르는 사람


자아성찰이 모자란 자기중심적인 사람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사람


자기애만 있는 자아도취적인 사람


말 많고 시끄러운 사람


불안해하고 불안정한 사람


옆에 누가 없으면 항시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


욕망과 결핍에 시달리는 사람


책 읽지 않는 사람


자신과 주변을 끊임없이 비교 평가하는 사람


혼자서 몰두할 취미와 재주가 없는 사람


남 시선에 연연하고 남 눈치를 보고 남 이야기만 하는 사람


관계로 사회적 인정을 받고자 하는 사람


사랑받기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사람


제 마음속에 중심이 없는 사람


자연을 벗 삼지 않는 사람이


'홀로 됨'을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자신감을 잃고 우울감에 빠져 자기 비하를 하고 절망하여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


즉 스스로에게 소외되는 '외로움'과 주체적인 '홀로 됨'은 아주 거리가 멉니다.


'홀로 됨' 즉 홀로서기란 스스로 선택하여 외부 세계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있어야 합니다.


홀로 스스로를 대면해야 합니다.


침묵 속에서 자신을 들어다 봐야 합니다.


고독 속에서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어렵더라도 인내하며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 침묵을 못 견뎌하죠.


그 고독을 못 견뎌하고요.


이를 고통으로만 여겨 두려워하고 도망치기 일쑤입니다. ​


고독을 우울과 소외와 고립으로 여겨


외로움을 참지 못해 조급하게 핸드폰을 들고, 채팅창을 열고, 카톡을 보내고, 전화를 걸고,


낙오된다는 불안에 열패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히고,


침묵과 고요의 시간을 성찰의 기쁨이 주는 충만감이 아니라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남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시간으로 허비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자신의 방에 가만히 머물러 있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파스칼 < 팡세 >



저는 피곤합니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피곤합니다. 아주 많이 피곤하죠. 그럴 때마다 잠시 떨어져 홀로 있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나만의 방에 조용히 있어야 할 시간이, 사랑이 샘솟듯 솟아오를 여유가 필요한 것뿐입니다.



요동치는 내면의 불안을 조용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외부에서 불안감을 해소할 방편을 찾는 이들에게, 갈급하게 타인의 위로와 인정에 매달리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이 세상에 난 혼자야라고 되뇌며


세상은 날 알아주지 않아


나 하나쯤 죽어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우울감에 사로잡혀 우울해서


어제도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렇습니다.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혼자일 거예요. 부모가 가족이 있건 없건 있었는데 깨졌건 사라졌건 우리 모두는 자신으로서는 모두가 혼자니까요. 살아있는 동안 사는 내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당신은 남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홀로'가 아니라 남들 사이에서 외롭게 '혼자'일 겁니다. 그러니 부디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지닌 사람으로 세상에 혼자라는 외로움에 절어 지내지 마세요. 그러기엔 당신의 삶은 진짜 살아 있기에도 너무 짧아요.



세상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건 고통입니다. 고통은 공평합니다. 고통스러운 순간이야말로 '홀로-됨'을 진실로 자각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불운과 병마에 시달리면 누구보다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우치게 됩니다.



불행은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행복은 행복할 사람을 주인을 가립니다. 고독과 고통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요? 왜냐고요? 행복이란 건 결국 당신의 마음이니까요.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내 마음에 달려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란 스스로를 아끼고 스스로 족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자족하지 못하고 행복을 외부에서 남에게서 찾는 당신은 항상 외롭고 괴롭고 불안할 겁니다.



팔자소관. 어쩔 수 없죠.


​맞습니다. 그래요.



세상은 당신을 알아주지 않아요. 열심히 일하고 참고 애썼는데도 남들은 알아주지 않아요. 당신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쏟은 노력을 열정을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칭찬도 보상도 인정도 없고요.



그런데 이렇게 물어볼게요. 누군가 당신을 왜 항상 알아줘야 할까요? 제 아무리 유명하고 잘나고 돈 많은 사람도 전 세계 모든 이가 다 알지는 못합니다. 60억 인구가 전부 서로를 아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는 알고 누군가는 모릅니다. 세상사 이치가 그렇습니다. 내가 한 일을 내 마음을 제일 먼저 알아주는 건 가족도 애인도 친구도 아니라, 남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지 않나요? 남에 연연할 시간에 나에게 물어보고 나를 아끼는 게 더 낫습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 하지 마세요.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한 일이야, 그를(가족을/ 회사를 /일을/ 뭐든) 위해서 했다는 말도 하지 마세요. 남을 위하고 싶었던 마음 뒤에 숨어있는 자신의 날 것의 욕망일 뿐입니다. 우린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자기 마음을 속이고 감추고 억누르고 있는 것일 뿐이죠. 내가 너를 위해 지금까지 참고 이렇게까지 다 해줬는데도 너는 날 알아주지 않았다고 화내고 실망하고 상처받았다면 그건 정말 그가 원하는 걸 그를 위해서 한 일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죠. 서운하고 섭섭하고 상처받는 이유는 상대가 잘못해서라기보다 내 진심이 통하지 않아서입니다. 그의 진심이 아니라 당신의 진심이요.




하지만 남은 내가 아니에요. 그 누구도 내 마음을 나처럼 알아줄 순 없어요. 그러니 진실로 그를 위해서였다면 마음 가는 대로 시도하고 해 주고 잊으세요. 기대하지 마세요. 상대에게서 보상과 대가와 감사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를 위해 애쓴 내 마음은 내가 알고 있지 않나요? 그걸로 족한 겁니다. 그러면 설령 상처받더라도 마음이 아프더라도 상대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여유가 생깁니다. 상대에게 모든 걸 쏟아붓은 자신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자기가 만족해서 할 일이 아니면 차라리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하고 있다면, 해야만 한다면 그것도 자신의 욕망임을 잊지 마세요. 모든 건 내가 스스로 한 내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생계든, 돈 때문이든, 체면이든, 이름 때문이든, 가족 때문이든, 자존심이든, 성공하고 싶든, 인정받고 싶든, 외로워서든, 사랑받고 싶어서든, 뭐든. 하고 말고는 당신 자신이 선택하지만 당신을 알아주고 말고는 그냥 운입니다. 변화무쌍한 날씨, 뜻도 의미도 부여하지 않은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과 같은 겁니다.



새옹지마. 맞습니다.​


당연합니다.



나 하나 오늘 죽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나 한 명 회사를 직장을 하던 일을 때려치워도 세상은 잘 돌아갑니다. 나 하나 사라져도 내 주변은 얼마동안은 슬퍼하겠지만 다들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겁니다. 그러니 당신이 죽어도(누가 죽어도) 세상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지는 못해요. 제 아무리 유명한 인간일지라도 똑같습니다. 그와 가장 가까이에서 삶을 일상을 공유한 사람들을 빼고는 죽은 이를 항시 기억하는 사람은 매일 그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산 사람은 결국 살아가는 법이죠. 세상에 날고 기던 인간도 모두 우리는 언젠가 잊히고 사라집니다.



지구상 60억 인구 중 나는 우주의 먼지입니다. 우리 한 명 한 명은 모두 우주의 티끌이고 숨결이고 아침이 되면 사라지는 이슬입니다. 나 하나 죽어도 내일은 다시 태양이 떠오르고 밤이 오고 별이 뜨겠죠. 그게 사람이란 존재의 숙명이죠. 당신이나 나나 우리는 그저 이곳에 왔다가 기억하는 삶을 잠시 살았다 다시 어디론가 저기로 사라지는 존재라는 사실요.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입니다. 기억이 인간을 인간답게 합니다. 내가 죽으면 내 기억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날 기억하는 사람들이 전부 사라지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마저 영원히 사라지는 것. 당신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똑같습니다. 인생무상. 덧없죠. 그러므로 남이 알아주길 바라고 기억을 남기고 가고 싶으면 당신이 먼저 남을 알아주고 먼저 다가가세요.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나요?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며 현실을 저주하는 당신에게 현재는 머지않아 늙음 그리고 죽음을 선사할 거예요. 하지만 상처와 불안과 실패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과거를 긍정하며, 지금을 느끼고 작은 것도 즐기며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는 삶은 홀로 됨의 자유를 자족의 기쁨을 선사합니다. 나를 즐기며 나를 돌보며 나를 섬기는 지금이 지복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요.



기억하세요.



과거는 내가 기억하는 순간 속에


미래는 오늘을 사는 내 안에 깃든다는 것을요.


​​



"외로움을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하니까 그럴 수밖에. 외로워야 육친의 따스함을 아는 법인데, 이 사회는 늘 기쁘고 즐겁고 벅찬 상태만 노래하라고 하지. 그게 아니면 분노하고 증오하고 저주해야 하고. 어쨌든 늘 조증의 상태로 지내야만 하니 외로움이 뭔지 고독이 뭔지 잘 모르겠지(중략)


인간의 실존이란 물과 같은 것이고, 그것은 흐름이라서 인연과 조건에 따라 때로는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며 때로는 호수와 폭포수가 되는 것인데, 그 모두를 하나로 뭉뚱그려 늘 기뻐하라, 벅찬 인간이 되어라, 투쟁하라, 하면 그게 가능할까? (중략)


자기를 속일 수 있다면 글을 쓰면 되는 것이지."


-김연수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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