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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Jan 14. 2024

신촌에는 모든 것이 있다

대학가의 정수, 신촌에 대하여 

  모두의 대학가


  대학교 앞에는 으레 대학가가 있기 마련이다. 젊음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대학가를 찾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보통은 소속 대학생들의 놀이터다. 나는 서울 동쪽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외부인도 종종 볼 수 있지만 우리 대학가는 우리 학교 학생이 절대다수였다. 외부인이 굳이 굳이 이곳에 와서 놀 이유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의 대학가와는 다르게 사실상 공용 수준의 대학가들이 서울에는 몇몇 있다. 하나는 그 유명한 홍대입구이며, 다른 하나는 신촌이다. 이미 대학가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고, 모두의 번화가로 자리 잡은 홍대입구를 제외하면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가는 아마 신촌이 아닐까? 


  나도 신촌엘 종종, 꽤 많이 갔었다. 서울의 서쪽에서 잡히는 약속이라면 신촌은 늘 후보지에 있었다. 그렇게 신촌에 가면 생각한다. 이게 대학가지. 어쩌면 고등학생 시절,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 대학가의 로망은 신촌이 모두 이뤄줄 것만 같았다. 그때도, 지금도 신촌은 모두의 대학가다. 


  

  대학의 정기는 모두 이곳으로 


  신촌이 대학가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데는 우선 기본적으로 인근에 대학교가 몰려있다.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그것이다. 신촌역 인근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서울의 주요 대학들이 몰려있다. 신촌의 터줏대감인 연세대부터 서강대와 이화여대, 상권이 다르지만 홍익대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덕분에 주요 4개 대학교의 학생들을 모두 품을 수 있는 저력을 갖추고 있다. 


  기본 고객층의 절대적인 숫자가 많기 때문에 신촌 대학가는 더 크고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신촌오거리에서 연세대 쪽으로 뻗어나온 거리에 가장 트렌드한 가게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다시 그 거리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골목과, 골목들을 이어주는 샛길에는 대학상권스러운 술집과 식당들이 빼곡히 들어가 있다. 그래서 밤낮 가리지 않고 휘황찬란한 간판과 넘치는 인파, 흐르는 열정은 이곳이 가장 번화한 대학가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렇게 주요 대학들이 몰려있는 곳이 서울의 동쪽에도 있다. 내 모교가 위치한 동쪽에는 고려대, 경희대, 시립대, 외대 등 마찬가지로 오밀조밀하게 학교들이 모여있다. 그러나 신촌 같은 거대 상권은 없다. 대학가는 존재하지만 이것들을 하나로 묶어줄 구심점 같은 곳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신촌 오거리


  신촌의 구심점은 신촌로터리라고 부르는 거대한 오거리에 있다. 신촌역을 완벽히 품고 있는 이 오거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우리가 흔히 신촌 대학가라고 부르는 상권과 연세대가 나온다. 그리고 각각 뻗어 있는 대로들은 이대, 서강대, 홍대입구로 향한다. 나머지 하나는 서강대교와 이어져 한강, 나아가 여의도와 강남으로 이어진다. 과장을 좀 보태면 서울 서쪽 도심에서 번화가의 젖줄 같은 로터리이자 거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앞서 말한 것처럼 주요 4개 대학이 신촌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대학에서나 어렵지 않게 신촌으로 갈 수 있었다. 심지어 신촌은 대부분 평지다. 군데군데 야트막한 산들이 있지만 신촌의 핵심 상권은 거의 완전한 평지다. 덕분에 백화점과 영화관 같은 대형시설이 들어오기 용이하고, 보행자와 방문객들이 쉽게 통행할 수 있다. 


  반면 서울 동쪽의 대학들은 위치상으로는 붙어 있으나 특정한 구심점 없이 중구난방으로 붙어 있다. 그나마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청량리나 회기, 월곡은 각자의 큰 단점이 있다. 청량리는 동쪽 권역에서 중요한 지하철, 기차역이므로 여객이 더 많다. 회기는 도로가 좁고 교통이 극도로 불편하며 경사가 졌다. 월곡은 산들로 둘러싸여 가기가 힘들다. 이외의 동네나 지하철 역들도 언덕에 위치해 있거나 인구가 밀집된 오래된 주거지다.   



  보행자 우선 통행 


  나는 보통 신촌역에서 내리면 지하철 출구보다는 백화점 쪽을 통해 신촌의 중심가로 진입한다. 그렇게 유리문을 통과하면 탁 트인 공간이 등장한다. 광장이라 부르기는 애매하지만 사람들이 이리저리 혼재되어 있다. 그리고 직선의 도로를 관통하는 대각선의 널찍한 인도가 눈에 들어온다. 일종의 사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덕분에 네 방향에 입점한 매장들이 전부 눈에 들어온다.


  이 대각선의 도로가 나는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약 100m 정도는 보행자만 이용할 수 있다. 차로 인해 단절되지 않고 언제든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다. 홍대입구를 관통하는 경의선숲길과 느낌이 비슷하다. 사실 보행자 도로 쪽에 엄청난 매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휴대폰 대리점, 프랜차이즈 카페 등등 쉽게 볼 수 있는 매장들이 입점해 있다. 그러나 신촌 중심가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곳으로 사람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진정한 대학가임을 스스로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도로에서 뻗어나간 골목과 길에는 역사 깊은 갈빗집부터 지극히 대학가스러운 술집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앞서 말한 대로 4개 대학교 학생들이 몰려들고, 학생들을 위한 상권이 조성되고, 그런 상권을 느끼기 위해 외부인의 방문이 잦아지면서 신촌은 몸집을 불려 나갔다. 



  고유명사 신촌 


  나는 혜화동의 대학로가 대체 왜 대학로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저 근방에 대학교가 많아서 그런가 싶었다. 왜 공연/연극의 성지에 붙은 이름이 대학로였을까 싶다. 그러다 스무 살 때 들었던 교양 강의에서 한 교수님의 설명을 들었다. 대한제국 최초의 대학교가 혜화동에 위치해 있었고 당시의 대학 앞에 위치한 유일한 길이라 다들 으레 '대학로'라고 불렀고 명칭이 이어내려 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학로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신촌은 결국 대학가이기에 거리가 깨끗하지는 않다. 그러나 얼핏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많은 외부인이 찾아도 신촌은 여전히 대학가의 느낌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어떤 트렌드가 상권을 지배해도 대학가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덕분에 깔끔하고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며, 그 느낌이 좋아 신촌을 찾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실 신촌은 이제 고유명사에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한 번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캠퍼스 낭만이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대학가는 저마다의 이유들로 로망을 실현시켜 주지 못한다. 하지만 신촌에는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신촌은 완벽에 가까운 대학가보다는 그냥 신촌 같다. 너무 부족할 것 없어 보여서 대학가 같지 않다. 신촌은 그냥 신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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