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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Mar 05. 2024

나는 휴대폰으로 웨이팅 한다

어플과 기계로 하는 웨이팅에 대하여

  기계로 하는 웨이팅  


  나는 맛집을 다니고, 음식을 좋아하면서도 줄 서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10분 정도야 그러려니 하지만 30분이 넘어가고 1시간에서 2시간 기다려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도 1시간 이상을 기다려서 먹을 가치는 없다는 주의였다. 음식 좋아하는 것치고 참 고약한 성질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로 오픈런을 했다. 차라리 조금 일찍 가서라도 웨이팅을 안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오픈런을 하던 어느 날, 그렇게 마주한 것이 가게 앞에 놓인 태블릿이었다. 그냥 자동 웨이팅 기계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번듯한 어플까지 있는 정식 서비스였다. 나는 홀린 듯 어플을 깔았고 그것은 향후 내 식도락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단순히 가게 앞에 가는 것을 넘어 원격으로 웨이팅을 등록할 수 있었다. 예상 시간도, 내 앞에 남아 있는 대기 인원도 알려준다. 심지어는 내 순서를 원하는 곳으로 미룰 수 있었다. 엄두도 못 내던 맛집에 도전할 수 있었고 웨이팅이란 문화를 포용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가장 현실적으로 체감한 기술발전일지도 모르겠다. 



  웨이팅 입문자 


  보통 둘 중에 하나다. 웨이팅을 해서라도 맛집을 쟁취하는 사람과 아무리 맛집이어도 기다릴 수 없다는 사람. 나는 보통 후자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웨이팅 어플과 기계 때문만이라 할 수 없지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가상의 줄 서기는 웨이팅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을 끌어당길만한 매혹적인 요인이 된다. 대게 내가 내 돈 내고 먹는 음식점을 기다리면서까지 가고 싶지 않아 하며 굉장히 시간낭비, 체력 낭비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잘만 이용한다면 웨이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 기계와 어플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이 점이다. 웨이팅 시장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던 소비자를 끌어들인 것. 더 많은 사람들을 웨이팅 경쟁에 참여시키고 심화시킨 것. 경쟁에 참여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경쟁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썩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이 산업에는 굉장한 활력을 불어 일으키는 중이다. 



  몸이 편해야 우선


  가장 큰 장점은 몸이 편하다는 것이다. 어플마다 차이는 있지만 골자는 원격으로 웨이팅을 등록한다는 점이다. 가게 앞에 가지 않아도, 가게 앞에서 죽치고 있지 않아도 된다. 적당히 시간을 계산해 근처에 있으면 된다. 기상이 좋지 못할 때, 일행이 많을 때, 물리적인 제약이 사라지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다. 


  사업자 입장에서도 꽤나 편리한 기능이다. 일일이 웨이팅 고객을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 업장 상황에 따라 입장 손님에게 알림을 하면 된다. 사업자 역시 원격으로 터치 몇 번을 통해 고객의 줄을 관리한다. 나도 언젠가 수동으로 웨이팅 줄을 관리해 본 경험이 있는데 생각보다 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신경 쓸 것도 많은 일이다. 


  이것 이외에도 미리 메뉴를 정해 주문을 하거나, 웨이팅 순서를 미루는 등의 편리한 기능들이 있다. 웨이팅이 가지는 가장 큰 단점인 피로함과 시간 낭비를 나름 효과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수단이다. 물론 이 어플 역시 손놀림과 타이밍, 운과 숙련도가 필요하지만 물리적인 웨이팅에 비해 간편하고 편리하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새로운 디지털 차단막 


  현실세계의 것들 중 하나가 또 디지털 세상으로 넘어갔다. 유한의 세계에서 무한의 세계로 또 넘어갔다. 하지만 이 디지털 세상에 따라가지 못한 사람들은 되려 식당에 줄 서는 것마저도 어려워졌다. 많은 이들이 디지털 세상에 적응해 나갔다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 어느 곳에나 약자는 있고, 디지털 세상도 마찬가지다. 


  오랜 노포들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서 웨이팅 기계와 어플을 이용하는 노포들도 있다. 노포의 오랜 단골이었던 기존 손님들 중에는 디지털에 취약한 이들도 있다. 현장에서 터치를 활용해 웨이팅을 할 수 있긴 하지만 그것마저도 부담인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현장에서 웨이팅을 해도 이미 휴대폰으로 웨이팅을 걸어놓은 사람들이 앞에 수두룩하다. 웨이팅마저도 그 사이에 차단막이 생겨버린 것이다. 


  게다가 원래는 무료였다. 일반 소비자는 웨이팅을 하면서 별다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웨이팅을 위해서 가상 화폐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순서 미루기 등의 기능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수익성을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가끔은 섬찟해진다. 스마트폰과 함께 폭발적인 성장을 했던 배달 어플이 이러했다. 그 당시, 우린 아무도 배달비로 6,000~7,000원을 쓰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웨이팅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다. 



  플랫폼의 기로에서 


  처음에는 참 신기했다. 그냥 태블릿에 내 번호를 입력하니 자동으로 웨이팅이 됐다. 전용 어플도 있었고 각종 신기한 기능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서비스가 그러하듯 누군가는 돈을 지불해야 하고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스타트업의 숙명인 수익 창출은 웨이팅 어플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제 단순히 웨이팅 기능만을 제공하는 어플은 없는 것 같다. 온라인 예약부터 포장, 맛집 리뷰 및 커뮤니티의 기능까지 넘보고 있다. 디지털 웨이팅이라는 중심축을 바탕으로 이용자를 끌어들였고 하나의 종합 외식 '플랫폼'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서비스에서 출발하여 산업 전체를 아우르고자 하는 야망을 품고 있다. 


  플랫폼의 세상 속에서 그것의 장단점을 우린 잘 알고 있다. 편리하지만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 수수료를 지불한다. 막강한 편리함을 앞세워 시장을 독점한다. 플랫폼 외부에 있는 이용자들에게는 너무 높은 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 시장 전체를 주무를만한 규모의 플랫폼들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 시작을 목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웨이팅을 디지털 세상으로 옮긴 것으로 시작한 외식 플랫폼의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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