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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Oct 06. 2024

밀키트의 민낯

  한때는 외식계의 샛별 


  밀키트.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면서 외식 및 식품 업계에서 주목받는 초신성이었다. 많은 언론과 기관은 앞다퉈 밀키트를 떠오르는 트렌드로 지정했고 스타트업 업체들이 난립했다. 대형 제조사와 유통사도 밀키트 시장에 뛰어들면서 단숨에 인지도를 쌓았다. 우리가 마스크를 통해 숨을 쉬던 그 시절의 일이었다. 


  가끔 대형마트를 간다. 쿠팡과 네이버로는 미처 채울 수 없는 오프라인 대형마트가 주는 설렘이 있다. 여전히 냉장코너 한 면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밀키트를 지나친다. 각종 찌개부터, 볶음, 탕, 파스타 등등 라인업은 화려해졌다. 하지만 왜인지 손이 가질 않는다. 기억 저편에서 밀키트를 사 먹었던 순간이 스쳐간다. 맛있었던가...? 간편했던가...? 저렴했던가...?


  미래 먹거리로, 신세대의 음식으로, 새로운 식문화로 밀키트는 화려하게 출발했었다. 코로나로 인해 불가능한 외식과 늘어가는 1인 가구 등등 밀키트를 위한 뒷배경도 두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작 몇 년 사이에 시장은 마치 점프를 하듯 뒤바뀌었다. 밀키트는 더는 매력을 어필하지 못했다. 정체되었고 한계가 명확했다. 가장 트렌디했던 먹거리는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어쩌면 밀키트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우리가 멀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먼 가성비 


  비싸다. 가장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단점이다. 마트에서 밀키트 코너를 그저 바라만 보는 이유다. 어쩌면 가성비와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가성비, 심지어는 오로지 가격만 내세우는 것과는 반대다. 2인분 기준 1~2만원은 우습게 넘는다. 


  가격대비 양이 부족한 것도 아쉽다. 기본적으로 2인분이지만 어딘가 푸짐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잘 손질된 풍성한 재료들은 요리를 완성시켰을 때 급격히 작아 보인다. 2인분 치곤 애매하다. 그렇다고 1인 가정이 사서 한 끼에 다 먹기에도 가격과 양이 모두 애매하다. 그래서 밀키트는 가끔 기분 낼 때, 혹은 손님용이나 여행용으로 활용된다. 아무래도 장바구니에 데일리 하게 담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초저가 경쟁에서는 확실히 쉽지 않다. 적당히 손질된 재료, 적당히 준비된 양념은 저렴할 수 없다. 늘 신선해야 하며 장기간 보관이 힘든 것도 한몫한다. 외식과 내식 그 중간의 가격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물론 가격대가 있더라도 손쉬운 요리 경험을 제공한다는 장점을 어필할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사실 이젠 그것도 쉽지 않다. 



  가정간편식과 요리, 그 사이 어딘가의 난이도


  밀키트의 최대 장점이 무엇이던가. 간편하게 요리 경험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손쉽게 요리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준다. 손질된 재료, 준비된 양념, 동봉된 설명서. 요리라기보다는 조립에 가깝다. 성취감과 난이도와 맛, 그 오묘한 밸런스를 유지한다. 하지만 균형이라는 말은 때때로 애매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쉬운 것은 맞지만 여전히 어렵고 귀찮다.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마저도 어렵다. 어느 세월에 포장을 까서 불을 올리고 음식을 볶고 있을까. 그냥 HMR 사서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끝이다. 간편식의 맛도 상당히 좋아졌다. 요리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주지만 굳이 장벽을 넘어서까지 요리를 할 이유가 되지는 못 한다. 쉬운 요리도 요리다.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고려 대상조차 아닐 수 있다. 불을 쓰기는 하니까. 


  주변에 갓 요리를 시작한 친구에게 물어보면 물가가 너무 비싸져서라고 했다. 외식도, 배달도 쉽지 않으니 칼과 프라이팬을 잡은 것이다. 반대로 여전히 요리를 하지 않은 친구에게 물어보면 귀찮고, 집에서 냄새가 나고, 한 번도 불을 다뤄본 적이 없어서라고 했다. 그럼 나는 생각한다. 밀키트는 꽤 비싸고, 꽤 귀찮으며, 꽤 냄새가 난다. 양극단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 밀키트는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이거 맛있는 거 맞아요? 


  요리보다는 사실상 조립이 맞다. 덕분에 난이도는 낮아졌고 덩달아 맛의 스펙트럼도 함께 낮아졌다. 분명 맛있지만 같은 재료, 같은 양념, 같은 조리법은 공산품처럼 누가 언제 어디서 요리해도 흡사한 맛을 내게끔 기능했다. 보장된 맛이지만 결국은 같은 맛이었다. 장점이지만 누군가에겐 단점이기도 했다. 


  집에서 하는 요리의 장점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간에 싱거우면 간을 더 하고, 재료가 부족하면 추가하면 된다. 방법과 과정은 다르겠지만 내가 요리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요리사의 특권이고 요리의 대단한 장점이다. 밀키트는 그 특권과 장점을 발휘하기 어렵다. 정해진 틀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 가격과 더불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밀키트 구매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집에 있는 양념과 재료를 추가하고 레시피를 비틀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요리를 완성시키면 문득 생각이 든다. 이럴 거면 밀키트를 왜 샀지? 밀키트와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고 자꾸만 다른 선택지가 떠오른다. 조금 돈을 더 쓰고 외식을 할까? 조금 더 불편해도 그냥 요리를 할까? 조금 맛이 떨어져도 저렴한 간편식을 먹을까? 밀키트는 정삼각형의 가운데서 말라가고 있다. 



  보편화와 일상화라는 산 


  밀키트는 왜 뜨거웠을까. 그때로 잠시 돌아가 보자. 우선 코로나가 있었고, 물가 상승이 있었다. 유통과 가공 기술이 발전했다. 요리 붐까지는 아니어도 집밥과 내식에 대한 욕망이 곳곳에서 끓어올랐다. 칼과 도마를 절대 잡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하고자 하는 이들은 끈질기게 문을 두들겼다. 밀키트는 좋은 도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가 없다. 물가는 더욱더 기괴하게 올랐다. 유통과 가공 기술은 더 발전해 괜찮은 간편식을 낳았다. 좋은 요리 입문 도구였던 밀키트는 입문의 도구로만 남아버렸다. 보편화, 일상화되지 못하고 간편식과 보통의 조리에 밀렸다. 샛별이던 시절 장점으로 각광받던 요소들이 말미에는 도리어 발목을 잡았다. 비싸고, 불편하고, 제한적이었다. 


  밀키트 시장이 완전히 주저앉지는 않았다. 여행, 집들이, 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요긴하게 쓰인다. 몇 해 전, 외식과 내식을 밀어내리라 예상하던 업계의 초신성이던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그 쓰임에 사족이 붙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가격이나 기술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보편화와 일상화까지 도달하는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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