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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따 Sep 22. 2024

땅콩추석

시가는 차례가 없고 올 추석 당일은 날씨가 너무도 황금적이었으므로 시할머니는 그 하루를 버리지 않고 마침 모두가 방문한 틈을 놓치지 않으며 대거 땅콩밭에 동원했다. 내가 이래 봬도  땅콩줄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잘 보니 아카시나뭇잎처럼 생겼다. 잘 뽑아야 땅콩이 깨끗이 올라오지, 아니면 줄기만 빠지고 땅콩은 땅속에 그대로란다. 나야 못한다고 하고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삼촌 시동생 남편 등등이 주도적으로 투입되었다. 서울언니야인 동서도 체험 삼아 뽑아보고 싶다더니 덥고 힘들다며 빨리 돌아왔다. 마치고 돌아온 시할머니에게 뭔 추석에 땅콩이냐고 씨부렁대니 시아버지가 곧 무릎수술이라 그전에 다 해치워야 하고, 무엇보다도 남들 가을 걷는 모습 보면 모오옵시 부럽다고 하셨다. 95세 옛날사람은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수긍은 간다만 자식들도 이제 70이 넘어 옛날만큼 농사는 힘들게 되었는데... 할모니 그건 노욕입니다 하고 싶었지만 총기 넘치는 시할머니는 귀가 어두워 이제 듣고 싶은 것만 들으실 수 있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않았다. 지금껏 땅을 보고 살던 노인이니 어쩌는가.


조카도 캐고 애도 캐는데 나는 안 캠


땅콩노역을 마친 놉들에게 식사를 차려주고 서울언니야인 동서와 근황을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향집에는 저녁에 닿았다. 나도 제법 아줌마인지 누가 이야기를 자근이 하면 그거 듣는 게 여간 재미다. 하여간 고향 부모님께 오늘 이러저러하여 땅콩 뽑았소하니 이렇게 더운데 그런 중노동을 했냐며 극진히 대접받았다. 고향집도 땅콩 한고랑 정도야 하는데 비둘기가 뽑아먹거나 머리 좋은 너구리가 알만 쏙쏙 빼먹고 깨진 빈 껍질만 올라올 때도 많다고 넌더리를 낸다. 들에 사는 크고 능글한 너구리는 손 닿는 포도도 따먹고 오디도 따먹고 사람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먹을만한 건 다 좋아하고 잘 파다 먹는다.


올 추석은 그렇게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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