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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따 Oct 30. 2024

어느 집

나 또한 윗대들이 살던 한옥집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 때 바로 앞의 빈터에 80년대 한창 양산되던 양옥집의 형태로 새로 지은 지금의 고향집으로 이사하여 쭉 살았다. 구옥 옛집의 기억은 여섯 살 터울 지는 오빠에게나 아련하지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 일가가 이사 나오고도 옛집은 한동안 비어있었기에 어린 나는 뚫린 창호문이 무섭다는 기억 정도만 남아있는데 후에 집이 헐리고 터는 이웃에게 매매해 옛 흔적은 전혀 없다. 지금은 좀 아깝다는 생각은 든다만 옛 집을 유지할만한 사람도 재물도 없었으니 별 수 없었을 것이다.


 지은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내가 성장한 고향집 또한 살면서 수리에 수리를 거듭해 초기와는 많이 달라졌다. 수리하기 전엔 난방온수도 불편하고 껍닥만 양옥이지 시스템은 한옥에 비바람만 덜 치는 거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아궁이도 있었으니까. 불 때는 방은 참 뜨끈뜨끈하긴 했다. 난 어쩐 일인지 고향집, 우리 집이 어릴 때 참 무서웠다. 조금씩 수리하다가 한 20년 전쯤 크게 수리하고부터는 구조도 바뀌고 나도 성인이고 하니 그런 느낌이 없어졌지만 어릴 때는 기묘한 일도 두어 번 있었고 특히나 지금껏 옛 형태가 고스란한 별 쓸모없는 음습한 다락방이 제일 무서웠다. 그 음침한 다락방에 휴지나 온갖 잡동사니들을 두고 써서 심부름으로 오르내리는 게 제일 고역이었다. 경사가 급한 다락 계단에서 데굴데굴 구른 적도 있지만 티끌하나 없이 멀쩡히 살아남아 지금까지 왔다. 다락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옥상지붕이었는데 그 재미 때문에 음침함을 겨우 참았다. 부모님과 할머니가 없을 때는 지붕 위를 기어올라가 혼자 스릴을 만끽했던 것이다. 옥상지붕에는 참새가 진짜 많이 살았고 쥐도 단골이었다. 가끔 참새가 허술한 지붕틈 다락방안으로 떨어질 때도 있었는데 그럼 그 참새는 아버지의 참새구이로 세상 떠나는 날이었다(그땐 정말로 지금만큼 간식거리가 흔전 만전이 아니었고 우리 아버지는 정말 대식가였다) 쥐는 쥐술을 담아 풍을 맞고 쓰러진 친척할머니에게 쓰이기도 했다. 90년대 오렌지족이 리바이스 광고를 할 때도 는 그런 고향집에서 살았다. 이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면 면소재지 사람이라 그런지 퍽이나 놀란다.


나는 참 다락방이 무서웠는데 애들은 안 그런지 조카든 우리 애든 고향집의 다락방을 참 궁금해했다. 어둑한 다락방이 무한히 비밀스럽고 옥상지붕의 로망이 그들의 모험심을 자극하나 보다. 연로한 부모님이 드나들며 관리하기도 힘들어 제법 켜켜한 흙먼지로 부연 옥상을 올라가 주니 애가 연신 오가며 신나 했다. 어우 발바닥 새까만 거 좀 봐라. 애는 나처럼 지붕에도 올라가고 싶어 했다. 아 애들은 다 똑같구나. 그러나 비가림막과 태양광패널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어두운 다락방은 엄마의 혼수를 싣고 온 오래된 트렁크와 증조할아버지의 낡은 서류가방, 옛날 사진 같은 것들의 마지막 보루다. 이젠 참새들이 살 수 없는 구조라 조용하지만 바닥먼지만 부연 거 보니 부모님과 같이 서서히 늙어가는 집이 좀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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