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씨의 상록수 노무현 대통령이 부르셨던 노래였고 16년 12월 광화문 탄핵정국 때 양희은 씨가 직접 나오셔서 함께 부르며 촛불을 들었다. 추웠지만 100만 명과 함께 해서 전혀 외롭지 않았었다. 이번엔 서울 갈 수가 없었다.
무슨 내가 깨어있다거나 진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살짝 그렇게 생각한 거 같은데 진즉에 꿈 깼다. 아는 것도 없거니와 오히려 막힌 면이 더 많으나 남편 말대로 우리는 그냥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고 정상적인 공분에 공감하고 단지 뻔해 보일지도 모르는 보편적인 가치를 중요시할 뿐이다.
어제 콘클라베라는 영화 소개를 보는데 추기경으로 분한 레이프 파인즈의 확신하지 말고 항상 의심하라는 설교가 인상적이었다. 확신은 통합과 포용의 적이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기적은 없으며 종교도 없다는 취지였다.
우리 애가 다니는 발달센터에서 수업해 주시는 깐깐한 원장님이 내게 사회성이 무엇일 거 같으냐고 물었었다. 네? 어버버 아랄랄 하니 사회성이 별 게 없어요. 남이 내 말을 들어주길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남의 말을 듣는 거예요. 거기에서 소통이 시작되고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거라고 우리 애도 이제 그런 소통을 하기 위한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것이라 했던가.
지금보다 젊을 때는 남의 말 듣고 보는 것은 괴롭고 지루하고 뻔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세상 사는데 거의 98%는 남의 말을 듣는 것이며 보잘것없는 나 스스로에게 집착하는 나 자신을 떼어내야만 한다. 2%는... 나를 사랑해야지. 2%의 자존감과 98%의 공감능력을 가진 순도 100%의 사람들이 추운 날씨에도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름 모를 남인 멀리 사는 나를 위해서도 빛을 밝히고 있다.
반지의 제왕 갈라드리엘이 프로도에게 준 에아렌딜의 빛은 가장 어두운 미나스 모르굴 북쪽 키리스 웅골의 요마 쉴롭도 뒷걸음칠 만큼 밝고 환한 별빛이었다. 그 뒤에 프로도가 등짝을 쏘이긴 했지만... 어쨌든 주인공 둘 다 살았으니까 좋은 셈 치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