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에 이 영화가 일본문화개방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에 정식 개봉했을 당시 앞서가는 일빠 오타쿠였던 학교 미술서클부장이 이건 꼭 봐야 된다고 등을 떠밀어서 몇몇이 함께 갔었다.
한창 폭발하던 소녀 갬성에 더욱 미췬듯이 불을 붙인 이 영화는 이제는 세상에 없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 역과 와타나베 히로코 2역을 한 나카야마 미호 배우가 외치는 오겐키데스까라는 대사로 유명하다.
사실 나는 배우가 그 대사를 외칠 때 웃음이 나올뻔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너무 감동적으로 보고 있는 서클부장에게 무색하도록 나 혼자 어금니 꽉 깨물었다. 다른 게 아니라 학교에서 제2외국어 일어 배울 때 가장 기본으로 배우는 문장 중 하나가 와타시와 코쿄 이치난세데쓰 ㅇㅇ상 오겐키데쓰까 하이 와타시와 어쩌구 하는 그런 건데 진지하게 그 문장이 큰 스크린에서 울려 퍼졌으니 좀 당황했달까. 개인적으로는 도입부의 하얀 설원에서 나카야마 미호가 숨을 참고 누워 쉴 새 없이 내리는 눈을 맞다가 일어나 숨을 몰아 쉬는 장면을 베스트로 꼽고 있다. 와타나베 히로코의 남친이었던 남자 후지이 이츠키는 산행 중 실족 사고로 생을 마감했는데 혼자 설원에서 눈을 감은 애인의 기분은 어떨지 똑같이 설원에 누워 감정이입을 하는 중이었다는 건 나이가 좀 들어서야 이해했고 그냥 그 하얗고 끊임없는 눈이 좋아서 그 장면을 좋아한다. 이런 거 보면 친구 말대로 나는 갬성은 있는데 생각은 없는 파충류 같기도 하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도 이 영화의 배경이었던 눈 내리는 홋카이도가 궁금해서 신혼여행도 홋카이도로 갔었다. 눈 하나는 정말 원 없이 많이 내리는 동네였다.
지금 우리의 시절이 워낙 하 수상하여 나카야마 미호 배우의 죽음을 알았어도 야 일본 따위가 지금 대수냐고 완전 관심밖이었지만, 한숨 돌리고 나니 역시 내 10대와 20대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 이 겨울의 러브레터가 잊히긴 어렵다.
남자 후지이 이츠키는 죽어가면서 '아~~ 나의 사랑은 남풍을 타고 달리고...' 하며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보내는 마지막 고백으로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불렀다.
나카야마 미호 배우도 푸른 바람 남풍을 타고 날아가 영원한 안식을 얻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