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민 May 24. 2024

 누구를 위한 해방일까?

해방일지

누구를 위한 해방일까? 해방일지


설민


   내가 과연 ‘해방’의 느낌을 알기는 할까? 해방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인가? 어느 것에도 구속받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 누군가에게서 벗어난 홀가분한 느낌?

  내 인생에서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은 때가 있었다. 한 달 동안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오면 서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들 둘을 데리고 갔던 때였다. 마음에 부담 없이 편안하게 지내면서도 그때는 몰랐다. 인천 공항에 내리는 순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꼈던 감정인 것 같다. 다시금 옥죄어오는 기분을 느끼면서.

   “아, 내가 한 달 동안 너무 자유롭고 편했구나. 이게 해방이었구나!”


   드라마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되었다. 재미있다, 구자경이 멋있다,라는 소문을 들었는데도 그리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해방”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내가 “해방일지”를 쓴다면 무슨 내용을 담을까? 또 극 중 인물들은 어떤 게 해방일까? 궁금해졌다.

   실질적으로 나는 지금 해방의 상태다. 스스로만 잘 살면 되니까. 이혼을 했으니 가정이라는 속박도 없다. 아이들도 성인이라 부담스러운 때는 지났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해방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감정에 시달린다. 

   그런 생각을 되살리면서 [해방일지]를 보았다.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지만 답답한 가정사. 염미정의 가족을 보면서 옆집 친구네를 보는 느낌이었다. 외골수 같은 아버지와 일만 하며 자신은 돌보지 않는 엄마, 철부지 첫째 딸, 말 많은 오빠, 과묵하게 집안일을 돕는 염미정. 한적한 시골풍경이 차분하다 못해 답답하고 먹먹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 큰 자녀들을 분가하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는 농사일과 싱크대 제작으로 돈을 벌지만 여동생의 빚보증으로 가세가 기울어 가족들에게 주눅 들어 산다. 말없이 가부장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면에는 가족들에게 미안함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 동네에 불현듯 나타난 구 씨. 그에 대해서는 성이 구 씨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싱크 일과 농사를 돕는 일손으로는 제격이다. 아버지가 곁을 내주며 일을 가르치는 것을 보면. 하지만 구 씨는 일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매일 술이 절어 산다. 살고 싶다는 희망이나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우울하고 기운 없지만 강단 있는 염미정을 보면서 나는 어릴 적 나를 떠올렸다.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며 바로 이해해 버리는 모습.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마음, 마음속으로는 자유로움을 외치면서 상황에 묵묵하게 수긍하는 미정. 그런 면이 나와 닮아있었다. 자신도 힘들지만 한낱 희망이라도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구 씨에게 할 일을 부여하는 게 미정의 성격이다. 

   “나를 추앙해요.”

   사랑으로는 부족하니 자신을 추앙하는 일로 살 이유를 찾으라는 말이다. 회사에서는 상사에게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전 남자 친구가 돈을 빌린 채 갚지도 않고 떠나버린 마당에 미정도 딱히 생활이 즐겁지 않다. 커피숍에서 일을 하며 앞에 남자친구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거기다 회사에서는 사원 복지로 동아리 가입을 강요한다. 집이 멀어서 못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미정은 다른 어떤 것에도 흥미가 없다. 여자 동료들과의 수다도 그다지 달갑지 않은 성격이다 보니 은근히 따돌림도 받는다. 

   동아리 가입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해방클럽”을 만들고 해방일지를 써나간다. 각자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가? 에 대한 깊은 성찰이 시작된다. 

   구 씨는 마담으로 일하면서 악착같이 그 세계에서 버텨내 인정을 받은 인물이다.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그가 염미정의 태도에는 신경이 쓰인다. 분명 사랑의 씨앗이지만 그는 그것을 외면한다. 미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미정을 사랑하게 된다. 어쩌면 서로에게서 해방의 기분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은 구속인 동시에 해방의 기분을 느끼게 해 주니까.

   사람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한 해방감을 느끼는가? 각자의 생각과 생활이 다르므로 모두 다른 해방을 꿈꿀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지금 내 몸은 자유롭지만 해방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해방일지”를 보면서 나를 나답게 하는 것들, 해방을 느끼게 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이태원 클라쓰! 사람이 답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