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눈빛엔 생크림처럼 부드러움은 없지만 스크램블 계란 흰자 같은 된 고소함이 있다.
움찔 놀라던 행동이 힐끗 쳐다보는 경계심으로 마음이 변한 듯, 열린 문 앞에서 가게 안 쪽으로 배를 깔고 쭈~욱 엎드려있다.
늘 그렇게 한 것 같다.
나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그녀의 모습에 내 머리를 기우뚱해 본다.
앞집 가게에 나이 든, 세상 모든 것이 귀찮은 레트리버처럼 아무 경계심 없이 엎드려있다.
앞발을 가지런히 모아서 열린 문턱 위에 걸쳐놓고 눈만 깜박이고 있다.
문 안으로 들여놓은 발만큼(발톱 끝에서 딱 발목만큼)만 가게 안으로 들여놓았다.
"이것은 그 녀석이 허용할 수 있는 나와의 친밀감의 척도!" 일까......?
그간의 경계심이 가득 찬 얼굴은 찾아볼 수 없다.
무표정하지만 "나 귀엽지!"하고 예쁜 인형 같은 표정을 짓고 내숭을 떨고 있다.
그 녀석과 내가 엮어 온 그간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때는 바쁘게 머리를 깎고 있으면 기다려 주는 배려심도 보여준다(이건 온전히 본인의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지만).
한 날, 길 건너에서 그 녀석이 보이면 난 사료 봉지를 흔든다.
그럼 그 녀석은 나에게 온다(안 오고 먼산 보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어쩔 수 없이 못 이기는 척 느릿느릿 온다.
알고 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심장이 움찔하는 작은 행복이 그 녀석과 함께 온다.
어떤 날엔 힘들고 지루한 하루를 그 녀석을 기다리는 맘으로 달래기도 한다.
묘한 끌림이 그 녀석에게 느껴진다.
짝사랑처럼 시작한 내 감정이 둘이지만 하나인 듯 희미하게 느껴지는 서로의 교감까진 아니어도 그립다.
약간 김 빠진 콜라를 한 모금 마신 듯, 탄산이 힘없이 코끝에서 찡하게 터지는 느낌이랄까?
점심시간
문을 닫고 외출하고 돌아오면 가게 문 앞에서 엎드려 있다.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지."하고 나만의 울타리에 생각을 가둔다.
복잡한 생각은 금물이다.
그만큼 짜릿한 행복을 맛볼 수 있어서다.
"밥 먹자"하면 입을 크게 벌려 하품 한 번 하고 귀찮은 듯 아주 느리게 몸을 일으켜서 밥그릇 쪽으로 걸어간다.
"나를 기다리게 해서 기분 나쁘지만 내가 널 이해할게." 하는 행동이다.
내 옆에서 같이 걸어가는 배려를 베푼다.
이건 누가 누굴 배려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려준 것에 대한, 짜증 내지 않는 너그러움에 대한 배려라고 눈에 보일만큼 뚜렷이 드러낸다.
온갖 생색을 다 내고는 눈길 한번 안 주고 밥 먹고 소리 없이 돌아서 간다.
"냥아, 차조심!"하고 돌아가는 녀석에게 인사하지만 아까와 같은 친근함은 없다.
그냥 우린 길들여지지 않은 관계가 된다.
움찔하게 들어온 행복이 싸늘하게 멈춘 심장 같아서 슬프다.
코 박고 밥 먹는 녀석에게 물을 들이밀면 놀란 토끼처럼 도망간 녀석이 오늘은 고개도 한번 안 들고 밥만 먹는다.
"이제 날 믿나 본데."하고 흐뭇해진다.
"이런, 나의 착각이었어."하고 물을 놓고 일어서는 순간 깨닫는다.
마지막 한 입을 채우고는 쏜살같이 줄행랑을 친다.
내 심장에 바람이 빠져나간다.
아주 싸늘하게.
어느 날엔,
하루에도 여러 번 그것도 짧은 시간 간격으로 찾아온다.
혹! 밥을 양껏 못 먹어서 다시 온 것 같아서 밥을 또 주지만 밥그릇엔 밥이 그대로다.
가슴 한편이 싸늘하다.
"녀석이 외롭구나!"
"심심한가?"라는 생각에 같이 놀아주고 싶지만 곁을 주지 않는다.
"냥이 왔어?"하고 말을 붙여 본다.
돌아오는 건 없다.
그래도 "밥 먹을까?"하고 되묻는다.
녀석은 이 한 마디 듣고는 돌아간다.
..........
이 모든 것들이 녀석과 내가 서로를 길들이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