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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로 Jul 25. 2023

그래도 내 새끼처럼....

녀석이 문 앞에 앉아있다.

어디서 사투를 벌이며 싸웠는지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볼품이 없다.

그간 통통했던 몸뚱이는 홀쭉하게 말라있었다.

물에 흠뻑 젖은 털이 덜 마른 것처럼 축축하고 지저분하다.

맞고 들어온 자식처럼 맘이 쓰리고 아프다.

난 사료 봉지를 들고 다가간다.

녀석도 몸에 익은 행동으로 앞장서서 걷는다.

우린 서로 말없이 하던 대로 하고 있었다.

한동안 못 봤어도 이 부분만은 서로 통하는 것 같다

밥그릇과 물그릇은 주인을 기다린 시간만큼 먼지를 가득 쌓고 있었다.

난 밥을 주고 물도 떠 주었다.

녀석은 천천히 사료에 입을 가져간다.

녀석의 편안한 식사를 위해 난 그 자리를 떴다.

잠시 후, 녀석은 저만치 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이제 가면 한동안 오지 않겠지."

"이러다가 영영 오지 않으면....."




불길한 생각은 기우였다.

다음 날, 녀석이 또 왔다.

나는 똑같이 녀석의 끼니를 챙긴다.

자리를 뜨고 유리창 너머로 녀석이 밥 먹는 것을 지켜본다.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맛있게 먹는 모습에 내 맘이 흐뭇해진다.

그러나 맘 한켠엔 또 못 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수박만큼 자릴 잡고 있다.

한참 동 코를 박고 밥을 먹던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좌우로 머리를 두 번 털었다.

입이 찢어지도록 벌렸다 다물었다 하며 입맛을 다신다.

미련이 남는 듯 잠시동안 그 자리에 엎드려 있다.

하품을 하 듯 입을 크게 한번 벌리고는 긴 혀로 수염도 고른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걸음을 내딛는다.

떠놓은 물은 입도 안 된다.

물 먹고 가라고 밥을 주면서 사정하듯 당부했는데 눈길도 안 주고 자리를 뜬다.

오늘도 이렇게 왔다 가는구나

하지만, 내일은.....




이렇게 매일매일 나랑 눈을 맞추고 있는 시간이 어느덧 40 여일이 지나고 있다.

이제는 녀석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좋든 싫든 집 나가면 고생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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