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도 한참을 오지 않았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하고 생각이 고장 난 라디오처럼 오락가락한다.
"설마, 아니겠지"라고 생각을 고쳐보지만, 이것도 잠시.
며칠이 또 흘렸다.
이른 아침.
출근길.
주차장에서 낯익은 몸짓 하나를 봤다.
느릿하고 유연한 몸짓으로 주차된 차량밑을 낮은 포복 하듯 지나가는 것을 봤다.
어두운 곳을 지나지만 낯익은 모습이라 단번에 알아챘다.
"냥아"하고 불렸다.
역시 미동도 없이 제 갈길만 간다.
"이런, 인정머리 없게"
서운하다
그래도 내 목소리를 알아볼 건데 털끝 하나 반기지 않는다.
나는 미련을 버리고 돌아서 걸었다.
그래도 난 돌아서면서 녀석에게 한마디 던졌다.
"냥아, 밥 먹으러 와."하고.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고 걸어 나온 길을 아쉬움에 돌아보았다.
긴 액자처럼 열린 문에 차가운 시멘트 벽이 놓여있고 삭막했다.
그때 시커먼 형체가 스르륵 나타나더니 나를 보고 다소곳이 앉았다.
녀석이었다.
"오, 녀석이 날 배웅하는 건가?"
"그렇지 내가 널 챙겨준 게 하루이틀이 아닌데 날 모를 리 없지."
순간 녀석을 의심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그리고 따뜻하고 야릇한 감정이 언 가슴을 녹이 듯했다.
서로 아무 말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난 녀석이 강아지처럼 내게 달려오길 내심 바라며 서 있었다.
내 욕심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바랬다.
맘속으로 성공의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띵!"
나의 간절한 바람을 엘리베이터가 깨버렸다.
평소보다 빨리 열린 문이 원망스럽다.
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녀석에게 눈으로 입으로 말했다.
"냥아, 이따 봐."
내가 돌아서서 걸어도 녀석은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계속해서 앉아 있었다.
나만 바라보고.
엘리베어터 문이 닫혔다.
그 문에 내 가슴이 끼인 듯 답답하게 아파온다.
그래도 날 위로한다.
"오겠지. 올 거야.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날 녀석은 오지 않았다
그러고도 한 참을 녀석을 볼 수 없었다.
이제 녀석은 내게서 정을 떼려고 하는 것 같다.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이 힘없이 흘러내리 듯 내 가슴에도 한 줄기가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