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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May 08. 2024

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53 내과 진료는 가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병원 측에 아빠의 내과 진료를 부탁드리고 2주 후 병동에 전화를 걸었다.

" 혹시 진료를 보셨나 해서 전화드려봤어요"

" 주치의 선생님은 다녀오라고 했는데 일정을 아직 못 잡았어요. 증상 또한 심하지 않고요. 일단 기침약은 드시고 있는 상태시고요. 피 가래가 나오면 저희에게 좀 보여달라고 하는데 보여주지도 않으세요. 퇴원을 위한 카드일 수도 있습니다.

고집이 너무 세셔서 기침을 하시면 담배를 피우시면 안 된다고 하는데도 산책장 문만 열리면 튀어나가세요.

감기가 유행이라 외출이 조심스럽고 무엇보다 지금 병원에 인력이 너무 부족해요. "​

"네. 바쁘시죠... 몸이 좋지 않으시면 담배라도 당장 피우지 마셔야 하는데 그렇네요. 혹시 일정 잡히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로부터 또 2주 후 병동으로부터 전화가 왔기에 전화를 받았다.

(혹시 어디 많이 아픈가? 내과 진료 일정이 잡힌 걸까?)

" 따님~ 죄송해서 어떡하죠? 간식비가 마이너스라서 아버님이 간식비 좀 넣어달라고 부탁하셔서요. 아버님 서랍에 과자가 가득해요. 간식이 저희가 보기에도 너무 과하세요. 간식으로 끼니 때우고 식사 잘 안 하시고 하면서 딸한테 간식비 넣어달라고 전화해 달라고 부탁하시면 이제 전화 안 해드린다고 했어요. 잠바가 지금 얇은 것밖에 없어서 담배 피우러 나가실 때 춥거든요. 두툼한 걸로 좀 가져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버님이 기침이 덜해서 내과 진료를 가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어요. 외진 계획은 현재 없습니다. "

이쯤 되면 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까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걸까?

집에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방에서 눈을 뜨면 담배를 피우고 매캐한 담배 연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그러다가 식사는 아예 손을 놓으신다. 그런 날이 여러 날 반복되면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보이고 배변조차 의지대로 되지 않는 상태로 술에 젖은 몸은 영혼마저 놓아버리고 마는데.

병원에 계시니 삼시 세끼를 드시고 간식도 찾아먹고 낮이 되면 깨어있고 밤이 되면 잠드는 사람 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 독한 술은 자의든 타의든 먹지 못하니 참으로 오랜만에 또렷한 정신으로. 가끔 본인 스스로 씻기도 할 테지.

정신병자나 있는 곳이라고 나가겠다고 하지만 아빠는 그곳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멀쩡하고 말끔한 모습으로 간호사들과 허허실실 농담도 해가며 집에 계실 대보다도 더 많은 말씀을 하고 계실 테다.

(가끔 기분 좋을 때 나한테 날리던 윙크를 간호사들한테도 했다 하셨지.)

소중한 가족을 폐쇄병동에 입원을 시켜야 하는 사정에 대해, 혹시 모르게 키워가고 있을 큰 병보다 무서운 게 뭐가 있어 당장 퇴원을 못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걸까요?

어떻게 해야 아빠를 살게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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