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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Oct 25. 2022

카나리아

이건 강릉에 사는 한 소년의 이야기인데요

카나리아



이곳에 이야기를 보내면 되나요?

그럼 이건 익명으로 해주세요

저도 전해 들은 거라…


이건 강릉에 사는 한 소년의 이야기인데요

수업이 끝나면 따로 갈 곳 없어

해질 때까지 바다에만 머물던 시절이 있었대요

모래사장에 허물처럼 벗어놓은 교복에는

바닷냄새가 가득 배어서

그가 골목을 걸을 때마다

철썩 처얼썩 하고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는 했대요


어느 날 소년이 가던 바닷가에

못 보던 가게 하나가 생겼대요

무지개 파라솔을 펼치면

그 안에 쏙 들어올 것 같은 조그만 가게에서

주인이 처음 보는 과일들을 펼쳐놓고

주스를 팔기 시작했고

소년은 바다에 몸만 담그고 고개를 내민 채

물끄러미 가게를 바라보기 시작했대요


해가 지면 소년의 수영도 끝나고

주스 가게의 장사도 끝나서

둘은 매번 어색한 인사를 나눴는데

한번은 주인이

소년에게 주스 한 잔을 먹고 가랬대요

소년은 메뉴판을 쓱 보고서

저는 이만큼의 돈이 없는데요 했더니

그냥 오백 원만 주면 된다고     

처음 보는 과일을 갈아 만든 주스를

처음 보는 컵에다 가득 따라 주었대요

사람의 눈동자에 윤슬이 맺혀있는 걸

소년은 그때 처음 봤대요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물었대요

-너는 형제가 없니

-없어요

-그럼 개를 키우니

-아니요

-외롭지 않니

-외롭지 않아요

-곧 외로워질 텐데…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으니까


형제가 없어서 카나리아를 키웁니다

카나리아는 어떻게 노래하니

피요 피요 피요 표 표 표 표

피요 피요 피요

표 표 표 표

소년이 먼저 피요 피요 피요 하고 노래하면

주인이 표 표 표 표 하고 이어 갔대요


주인을 만나기 전

달콤한 주스를 맛보기 전

아직 외로움을 알기 전에

소년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지금보다 더 커다란 새장을 사는 것

소년의 카나리아가

더 큰 새장에서 피요 피요 노래하는 것


그래서 지금까지 용돈이 생기면

몽땅 조그만 유리병에 모아왔는데

소년은 매일 주스를 마셨고

동전을 모아둔 저금통의 무게는 가벼워졌대요

유리병의 동전이 하나도 남지 않은 어느 날

머쓱한 빈손을 감추며 바닷가에 나갔더니

주스 가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대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아서

꿈을 꾼 건가 싶었는데

그 사이 소년의 키는 이 센티나 자랐고

딱 그만큼 바닷물의 온도는 낮아졌대요

여름이 끝나고 가을도 한참 지나는 중이었대요


소년은 그때 알았대요

여름이 시작되던 날

검고 붉게 그을린 제 가슴 안쪽에

새장 하나를 두고 있었던 것을

새는 점점 자라고 생기가 넘쳐

소년은 새장의 크기만 넓히고 있었는데

새장 안에서 날지 않는 새를 지켜보는 건

외로운 일이라는 것


여름이 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소년은 한 계절을 꼬박 앓았습니다


옷장을 열어

깊숙이 넣어둔 두꺼운 이불을 꺼내던 날

소년은 새장의 문도 살짝 열었는데요

카나리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새장을 나와

숲으로 푸르르 날아갔대요

가끔씩 세상이 멈춘 것처럼 조용할 때

숲속에서는 카나리아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는데

피요 피요 피요 표 표 표 표

어떤 건 울음이고 어떤 건 노래인지

소년은 그제야 처음 알았대요


그리고 그해 겨울

여름의 주스를 기다리며

다시 유리병에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대요


그 다음은 몰라요

저도 들은 지 몇 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예요





누군가를 좋아할 때 나는 더 큰 새장을 사는 사람이었다. 새장은 점점 더 좁아지는데 그 해결법은 내가 더 큰 새장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새를 풀어 줄 생각은 못 했다. 결국 믿음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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