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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크 Stark Jun 06. 2023

무지로 인한 불행의 스노우볼

<이니셰린의 밴시(2022)>

광활한 바다 위에 아름답게 펼쳐진 외딴섬 이니셰린. 이곳에선 술집도 하나, 성당도 하나, 식료품점도 하나이다. 이토록 폐쇄적인 이니셰린이라는 공간에서 마을 사람들은 좋든 싫든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들을 서로 공유한다. 이웃동네의 살인사건이 뉴스가 되고, 두 중년 남성이 다툰 소식은 마을의 가십거리가 된다.



파우릭은 자신이 콜름과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라는 콜름의 한 마디에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어제까진 좋아했잖아요. 그런 줄 알았는데." '무의미한 수다 대신 음악에 집중하고 싶다'는 진솔한 대답도, 파우릭으로서는 절연당한 이유로 납득할 수가 없다. 이로써 귀찮게 하지 말라는 콜름의 단 한 가지 요청은 묵살된다.


파우릭의 무지한 집착에 콜름은 결국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의 집 대문에 던지는 기행까지 감행한다. 심지어 바이올린을 켜기 위해 꼭 필요한 왼손의 손가락 5개다. 그가 파우릭과 선을 그어가면서까지 지켜내려 한 음악활동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이다. 이러한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시오반도 지적하지만, "알아. 이제 좀 알아듣네."라며 그게 이 행위의 이유라는 듯 설명한다. 파우릭에게 '제발 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이다. 결국 파우릭의 무지는 관계뿐만 아니라 콜름의 손가락까지 절단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그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실 이니셰린의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무지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파우릭을 '바보'라고 무시하는 그들도, 정작 바다 건너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저 멀리 들리는 대포 소리가 누구의 대포인지, 왜 발사되는 것인지 알지 못하며, 그저 멀리서 상황을 가늠할 뿐이다. 극 중에서 내전에 대한 언급은 '지긋지긋하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 지간에 행운을 빈다' 외에 뚜렷하게 나타난 적이 없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의 본질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이를 인지하려는 의지조차 없다. 마치 외부환경, 즉 본토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심지어 마을에 단 한 명뿐으로 보이는 경관은 자랑하듯 으스대며 말한다. "자유국 친구들이 IRA 몇 명 처형한대요. 그 반대였나? 요즘은 세상이 하도 빨리 변해서. 편먹고 잉글랜드 놈들만 죽일 때가 편했는데." '누가 누굴 처형하는지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냐'는 콜름의 질문에는 "6실링에 공짜 점심이면 됐지"라고 대답하며 껄렁하게 웃는다.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도 그저 눈앞의 흥밋거리와 너무도 사소한 물질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는 '주님이 이러한 죽음에 신경 안 쓰는 게 모든 문제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콜름의 대사와도 이어진다. 콜름이 당나귀 제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고백하면서 덧붙인 말이다. '이러한 죽음'이란 인간의 무지 속에서 스러지는 생명으로 해석된다. 콜름은 교리상 심각한 죄로 여겨지는 경관 폭행과 자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당나귀의 죽음에는 마음이 좋지 않다며 신부에게 고백한 바 있다. 일전에 파우릭과 한순간에 절연한 것에 대해서도 고해할 필요가 없다고 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당나귀의 죽음은 이 모든 행위들과는 달리 콜름의 '무지'로부터 벌어진 사건이라는 차이가 있다. 콜름도 손가락을 잘라낸 자해행위가 파우릭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다.' 그저 자신의 신체를 잘라내는 것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3자에게 또 다른 불행을 야기하는,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이러한 죽음'은 계속해서 마을을 맴돌고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한다. 도미닉도 이니셰린의 무지가 야기한 희생양으로 볼 수 있다. 도미닉은 마을에서 가장 멍청하다고 평가되며, 모두가 기피하는 청년이다. 또 한 편으로는 권위적인 아버지의 지속적인 학대에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어른이 부재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던 인물이다. 이니셰린의 사람들 중 유일하게 그에게 다정함을 보여준 파우릭과 시오반에 친밀함을 느끼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파우릭마저 끔찍한 거짓말로 콜름이 친하게 지내던 음대생을 본토로 보내 버린 사실을 들었을 때 더 이상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느낀 그는 스스로 강가로 향했다. 이니셰린 마을이 내몬 죽음이지만, 그저 '발을 헛디뎠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마을의 뉴스거리로만 스쳐 지나간다. 그 어떤 문제의식도, 죄책감도 없다.



이니셰린 사람들의 무지는 콜름과 시오반이 마을 사람들을 지루하고 편협하다고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콜름과 시오반은 '한 줌의 평온을 느끼고 싶을 뿐'인 이니셰린의 아웃사이더들이다. 그리고 콜름은 시오반에게 계속해서 서로가 동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처음에는 '너도 이해하지?'라며 동의를 구하기만 하지만, 이후 콜름은 다시 한번 '죽기만을 기다리며 혼자만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될까 봐 걱정될 때가 있다'며 '시오반 너도 그렇다'라고 제대로 짚어준다. 이번에는 질문이 아니다. 시오반은 두 번 모두 부정하듯 문을 닫고 대화에서 도망쳤지만, 결국에는 두 번째 대화 후 바로 본토에 전보를 부친다. 이니셰린을 떠날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시오반이 이니셰린을 영영 떠난 것은 당나귀 제니의 죽음과도 겹쳐 보인다. 콜름의 잘린 네 손가락은 제니의 죽음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시오반이 서둘러 이니셰린을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애당초 비극의 시작이었던 콜름은 끝까지 이니셰린에서 파우릭과 마주치며 살아갈 것처럼 보인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집에도 우두커니 앉아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과는 달리, 이후 옷과 얼굴에 그을음이 묻은 채로 멀쩡히 살아 서있는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한다. 시오반뿐 아니라 이니셰린에서 겉돌던 또 다른 인물 도미닉도 죽음으로써 이니셰린 섬을 떠났건만, 콜름은 그럴 수 없다. 콜름은 자신이 겪고 있는 좌절감의 근원을 모른다. 콜름은 이니셰린의 섬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무지가 야기한 불행에 속죄하며 살아갈 것이다.


바다 건너에서 더 이상 총성이 들리지 않듯, 한 바탕 사건이 지난 후에야 파우릭과 콜름 둘 사이에 그토록 바라던 '한 줌의 평온'이 찾아온 듯 보인다. 그러나 이는 그저 먼발치서 추측할 뿐이다. 대립과정에서 이미 둘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콜름이 소중히 여기던 악기, 전축 등은 그의 집과 함께 타버렸으며 음악을 연주할 손가락도 잃었다. 파우릭은 친구도, 가족도, 당나귀도, 친절한 마음씨까지 잃었다.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일도 있다는 파우릭의 말처럼, 앞으로의 일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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